2018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피부에 와 닿는 해였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받아 물러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조기 대선을 치러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적폐청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후 국민 편에 서기보다 비선실세 편에 서서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다가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권력의 정점에서 끌려 내려와 포승줄에 묶여 재판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와 함께 권력의 심장부에서 호의호식하던 이들도 줄줄이 굴비 엮이듯이 구속되는 신세로 추락했다.

예로부터 현자들은 웃음에서 울음을 보고, 발전에서 퇴보를 보며, 삶에서 죽음을 본다고 했다. 만물의 이치가 옳음과 그름,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사 영원히 절대적인 것이 없듯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또한 그 흐름을 타서 순회하듯 우리네 살 속을 파고들어 함께 동거동락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국교회는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시점에 저마다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었다. 한국교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연합기관의 통합 기조를 이끌었다. 그러나 결과는 또 하나의 다른 단체가 만들어지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주인의식은 반드시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데 일을 벌이기만 했지 책임지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한국기독교계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집착증 환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대형 교단이나 대형 교회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대 교단의 총회장인데 일개 노회 시찰 규모도 안 되는 조무래기 교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내 위상과 지위에 걸맞는 자리를 만들어 높은 자리에 앉아 폼 좀 잡아봐야겠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런 발상이야말로 어린애들 골목대장 노릇하는 수준이다.

교단 총회장들은 스스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가가 되어야겠다는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년 임기동안 앞선 총회장들이 남긴 발자취에 누가 안 될 정도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1년은 금방 지나간다. 내가 총회장을 하는 동안 교단을 내 잣대로 개혁하고, 한국교회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과욕을 부렸다간 남들이 이뤄놓은 것마저 망치게 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아야 그나마 후회가 덜 할 수 있다.

도산 안창호는 “자기의 몸과 집을 자신이 다스리지 않으면 대신 다스려 줄 사람이 없듯이 자기의 국가와 자신의 민족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요, 주인관념이다”라고 말했다. 주인의식은 이처럼 철처한 책임감을 동반한다는 뜻이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난 첫해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일회성 행사로 마무리될 수 없듯이 한국기독교의 개혁과제를 실천에 옮기는 그 첫해가 올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들의 의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내가 뭘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엉킨 매듭과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주인의식은 남들이 꺼리는 봉사와 희생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지 높임받는 자리에다 목을 매는 건 품격을 떨굴 뿐이다.

어느 때부턴가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이대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 하는 위기감이 바이러스처럼 스며들어 있다. 정말 한국교회는 여기까지인가. 새해 아침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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