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찬 목사

우리는 포도주가 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교회는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신년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오늘 한국교회는 포도주가 떨어진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닌지. 성서는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행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이며,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행한 포도주의 기적은 돌덩어리로 변해버린 인간의 마음에 많은 감동을 준다. 예수님의 포도주 기적은 잔치집 주인과,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가 주었다. 또 잔치집 분위기를 흥겹게 해 주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가 준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가져다가 주었다. 가나의 결혼잔치에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잔치집의 축제를 함께 나누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한복음 2장1-12절)

이 성경구절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다. 성경말씀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으면서도, 그 사회에 주어진 말이다. 예수님 당시 결혼 관습은, 신랑 집에서 7일 동안 잔치를 열어야 했다. 들러리들은 신부를 기다리는 7일 동안, 신랑은 손님을 접대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신랑에게 부끄럽고 슬픈 일이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포도주가 떨어진 모습이다. 교인들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내 가슴에 사랑과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분명히 우리는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도 목회자와 교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참된 감동을 잃어버리고, 골방에 앉아 허공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운동경기나, 텔레비전 연속극, 격투기를 보면서 환호하며 감동한다. 하지만 이웃의 기쁨과 아픔에 대해서 함께 하지를 않는다. 그만큼 마음이 차가워졌다. 아니 돌덩어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시달다리다가 자살하고, 친부모에 의해서 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식을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하고, 그 진상을 밝혀달라고 3년이 넘게 차가운 길바닥에서 아우성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들을 비하는 글을 SNS에 퍼다 나르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모습은 참담하다 못해 안타깝고 부끄럽다.

오늘 우리가 주말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교회공동체의 일원들은 왜 울어도 같이 울 줄 모르고, 피리를 불어도 함께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딱딱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마음이 아스팔트처럼 메말라 버렸다. 이것은 분명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가슴이 돌로 변한 결과이다.

예장 한영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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