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카이사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나타나 로마제국 중흥의 토대를 닦았다.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지역인 갈리아를 제패한 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의 삼두정치를 종식시키고 실권을 장악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보수 세력에 의해 암살당한 당일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동방의 파르티아군에게 로마군이 당한 ‘카레의 패배’의 설욕전이자, 당시 포로가 된 1만 명 로마병사의 구출작전인 셈이었다.

카레전투에서 파르티아왕국에 부잡힌 1만 명의 포로는 왕국 북동부 오지인 메르프로 보내져 노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려 할 당시는 이미 9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혹독한 강제오동을 견디고 몇 명이나 생존해 있을지 모르지만,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들을 구출하는 것은 로마군의 의무라고 생각해 원정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이 계획은 일단 무산됐다.

이후 로마는 내전상태에 돌입했지만 결코 파르티아왕국에 있는 포로들을 잊지는 않았다.

이어 권력을 장악한 아우구스투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기원전 21년 로마와 파르티아왕국 사이에 강화조약을 맺었고, 강화조약 건으로 32년 전의 전쟁포로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는 로마군 생존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로마는 파르티아군이 전사자에게서 빼앗아 전리품으로 보관하고 있던 로마장병들의 갑옷과 무기를 반환받았다.

이러한 전통은 로마군이 용병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구성됐기에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용병에게 있어 참전이란 거래관계에 불과하지만 시민군에게는 공동체에 대한 명예로운 의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출처 : 위대한 기업, 김경준 지음. 로마에서 배운다.)
2017년! 정치, 종교, 특히 교회 역시 수많은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의 여유로움도 사치에 불과했던 시간들, 오직 주님 안에서 행한다 하면서도, 평강을 논하기조차 거북스러웠던 한해가 아니었을까? 인간사가 다 그렇다 하지만 예기치 않던 일들의 연속, 정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서도 아예 모른다 할 수 없는 사건들의 격랑에 순간순간이 두려웠던 시간들, 성탄의 기쁨으로 잊어보려 하지만 그도 잠시 한해가 저무니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성도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그들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하는 등, 걱정만이 엄몰해 온다. 따라서 생각에 잠겨 스스로에게 담론(談論)도 해보지만 딱히 대하가 안 되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자 하지만 초조함이 몰려오니 마냥 무릎만 꿇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열심 두드려가며 설계도 해보고 고치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기도 하였지만 이미 다 경험했던 일들만 떠오르니 신년계획이 그리 만만치 않다. 평소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사고해 보았는데도 마땅히 묘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데 무심코 집어든 책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들을 구출하는 것은 로마군의 의무라고 생각해 원정을 계획했다”는 글을 접하면서, 필자는 예수님 생각보다 필자자신을 위한 계획에 매몰되어 있었음에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눈물로 변했다. 그래 나는 단 “한 성도라도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하는 각오로,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복을 누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15장 12절)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