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아멘’은 교회의 용어 중에서 가장 즐겨 쓰는 말이다. 사전적으로 ‘안전하다, 신실하다, 영양분을 주다’ 등을 뜻하는 아람어 ‘아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히브리 동사는 ‘끝까지 버티다, 지지하다, 양자로 기르다(에 2:7),’ 수동태가 되면 ‘견고하다’(사 22:23), ‘지속적이다’(삼하 7:16), ‘굳게 서다’(사 7:9) 등 영속적인 면이 강조되고, 사역형에서 ‘굳건하다’(사 28:16), ‘믿다, 의지하다’(출 4:1, 31; 사 7:9; 합 1:5; 시 116:10)로 내면화된다. 여기에서 전치사(b)와 함께 쓰이면 ‘~ 를 확신하다, 믿다’로 신앙의 대상과 일치하려는 의미를 갖는다(출 19:9; 삼상 27:12; 대하 20:20; 욥 4:18; 렘 12:6). 한편 부사 ‘아멘’은 신명기 27장에 연거푸 12 차례 언급된 대로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이라는 뜻으로 앞서 선언된 저주에 대한 확인이다. 기도의 말미나 설교 중의 ‘아멘’이라는 응답도 같은 맥락이다(신 27:15-26; 왕상 1:36; 렘 11:5; 시 41:14; 72:19; 89:53; 106:48; 사 65:16).

아만에서 파생된 명사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만은 숙련공, 장인(匠人), 예술가 등을 가리킨다(아 7:2). 둘째, 아몬은 잠언에서 세상의 기초를 놓은 건축가, 곧 하나님으로 묘사된다(잠 8:30). 나중에 ‘아멘’은 하나님의 이름이 된다(계 3:14; 사 65:16). 고유명사로 다윗의 큰 아들 ‘암논’과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모두 ‘신실한 자’를 뜻하고, 헤만도 같은 뜻이다(왕상 5:11). 또 다른 명사 에메트는 언제든지 믿을 수 있고 한결 같으며 지속 가능한 상태라는 뜻에서 진실, 또는 진리라는 추상적 의미를 확보한다(시 45:5; 슥 8:19). 마지막으로 명사 에무나는 ‘흔들리지 않음, 꾸준함, 충실함, 견고함’ 등으로 쓰인다. 한글성경은 에무나를 ‘신실, 진리, 성실’ 등으로 옮겨 문맥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신 32:4, 시 37:3, 119:86, 잠 12:17, 사 25:1, 렘 5:1).

하박국에서 에무나는 믿음으로 번역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중세 교회개혁의 구호처럼 활용되었고, 게다가 루터의 번역으로 에무나는 를 거의 대부분 ‘믿음’(Glaube)으로 이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전적 풀이에 의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는 의미를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구약에서 맨 먼저 나온 에무나는 출애굽기 17장 12절로서 그 본래적인 뜻을 잘 짚어낼 수 있다. 개정과 NIV는 마치 자동사처럼 옮겼으나 새번역과 NRSV의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깝다. ‘그의 두 손의 버티기가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되었다’(사역). 익숙한 ‘믿음’에 비하면 느낌이 다르지만 ‘버티기’는 모세가 한계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모세가 이를 악물고 두 손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자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바울의 가르침 때문에 ‘믿음’을 가치 판단의 척도나 신앙고백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구원 받은 날짜까지 알고 있어야 ‘믿음이 있다’고 간주하는 극단주의자들도 있다. 구약의 믿음, 에무나는 극성스럽게 신앙생활 하다가 제 풀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양보할 수 없는 소신 이전에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으며 끝까지 버티고 마지막 순간까지 견디는 힘과 의지다. 마가도 마지막 때의 박해와 시험을 끝까지 버티라며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막 13:13).

이사야는 급기야 메시야의 통치를 ‘에무나’라고 선포한다(사 33:6). 예언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대의 평안(에무나)’이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 경외가 마지막 순간까지 방해받지 않고 꾸준히 실현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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