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탁 기 목사.

흑인해방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은 그가 암살당한 뒤 어느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축사를 했다. 그 축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어디로 오실까요. 백악관으로 오실까요. 부요한 백인들의 교회로 오실까요. 아니 그 분은 할렘가로, 가난과 범죄가 들끓고 인간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그곳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가는 곳에 교회도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다윗문화에 길들여진 한국교회의 거대한 교회당과 휘황찬란한 십자가탑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있다. 이 곳이 바로 그리스도가 있던 곳이며, 삶의 현장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맑은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하고,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야 한다. 탐욕과 허위로 충혈된 눈으로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을 볼 수 없다. 그리스도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기 위해서 역사가 흐르는 물줄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알리는 미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의 귀를 막고 있다. 그리스도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 위해 예민한 청각을 가져야 한다. 새해 아침 마음의 묵은 때를 모두 벗겨내고, 맑은 청각을 갖자.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갖자. 이 희망을 230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은 물론 세계민족과 함께 공유하자. 이 희망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실현할 때 현실로 다가온다.

올바른 교회,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태복음 25장 22-30절)

이 성경말씀의 앞부분은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해서 신랑을 맞고,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어 신랑을 맞지 못하고 잔치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굶주린 자, 목마른 자, 힘없는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에게 한 것이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고 심판이 내려진다.

이 두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달란트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종들의 행위는 하나님나라의 기쁨과 관련되어 있다.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의 처녀,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해서 행동했다. 한마디로 주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주인의 일에 충실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책임을 회피했고, 자신에게 충실했고, 행동을 거부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한국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증경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