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공분에 휩싸였다. 고준희 양의 친부, 친부의 내연녀, 내연녀의 모가 합작해 고양의 주검을 유기한 사건을 비롯해 친모가 4살과 2살된 아들, 그리고 15개월된 딸을 화재로 위장해 살해한 사건, 막내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등등 계속되는 존속살인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원형이 사건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존속 살해사건은 오늘 일그러져 가는 현대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부모도, 자식도 믿을 수 없는 삭막한 나라로 변질 됐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모와 자식에 의해서 자행되는 존속 살인은 인간사가 그렇듯이 ‘원상회복’이란 없다. 아무리 고달프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그 주검을 유기하고,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이 세태 속에서, 누가 생명의 자유 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생명의 존엄성을 보장 받을 수 있겠는가.

연말연시에 매스컴을 통해서 안방에 전해진 여러 형태의 존속살인 사건, 특히 아이들에 대한 살해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주검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아우성친다. 이 ‘피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마디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셨는데,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친부와 친모, 그리고 내연녀, 사악한 아들은 부모를 살해해 주검을 아무도 모르게 유기한다. 또 은폐시킨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로 일관한다. 은폐시키기 위해서 연극까지 꾸민다. 공권력도 농락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2017년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면서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그만큼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성경의 말씀이다. 목사가 자신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를 살해해 주검을 암매장하고 은폐시켰는가 하면, 사랑해서 낳은 딸을 살해해 수개월동안 집안에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며, 우리사회이고, 종교계이다.

이웃들이 살해당하는 우리의 딸과 아들들에 대해서 작은 관심만 가졌더라도, 이와 같은 일은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2018년 무술년 새해 아침 소망해 본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 어르신들이 황혼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꿈을 꾸어 본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생명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새해 아침에 소망해 본다.

죽임 당한 자들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맑은 귀, 깨끗한 마음을 갖자. 그리고 이들의 아우성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 땅의 피조물들이 누구에 의해서 상하는 일이 없도록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깨닫자. 죽임을 당한 자들에 대한 원상회복은 없다. 그러나 죽임 당한 자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는 하늘에 사무친다.

생명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오늘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사랑받아야 할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며, 아우성치고 있다. 하나님은 죽임당한 자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네 딸 준희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이것만이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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