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일부 한국교회의 목회와 부흥사는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헌금을 많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의 액수가 바로 구원의 척도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분명 맘몬과 바벨을 노래한 결과이다.
성서에는 어려운 시기에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 31절과 32절에는 기생 라합과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3절부터 12장 2절까지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이겨낸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난을 당했다.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다. 믿음은 고난을 통해서 증명된다는 것을 교육하고 있다.

일본 식민지아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당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3.1만세운동의 주체였던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 그리고 한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희생을 당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평신도들은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를 당했다. 그리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라가 행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분단된 나라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기도하는 것은 한민족이 하나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난을 통해서 믿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일제하에서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들은 일본국가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에 서슴없이 참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기철 목사와 같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신앙의 양심을 지켰다.

그렇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은 실상이라고 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장 17절)고 했다.

눈에 보이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가슴에 늘 말씀을 간직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헌데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척도를 말씀이 아닌 헌금의 액수로 계산한다. 그만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맘몬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맘몬을 사랑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땅 이외의 하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면, 극단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상상력이 고갈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은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상상력을 가지고 얄팍한 삶을 살고 있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에서 나뭇가지에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를 나란히 그려놓은 그림을 놓고 “은행 달력에 북한 인공기까지 등장했다”고 비판하는 정치지도자의 상상력이 고갈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지도자의 상상력이 초등학생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최소한도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했다면, 초등학생의 그림을 놓고 이와같은 비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치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자.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