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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죽임당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 교회는 없었다”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계속되는 존속살인사건을 점검한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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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1  1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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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소리’가 하늘에서 사무쳐

경제적으로 잘산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왜 친부, 친모, 양모, 양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가. 부모가 왜 자식에 죽임을 당하는가.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폭력에 시달리며, 학대받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난 2017년 정유년 한해를 뒤돌아보면, 그 어느 해보다도 친부, 친모, 양부. 양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많았다. 년말연시 죽임당한 아이들의 끔직한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안방에 그대로 전해졌다. 묻힐 뻔 했던 아이들의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들이 수개월 지나서 드러났는가 하면, 어린 엄마의 방화에 의해서 삼남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이웃인 우리들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지난해 3월 친모의 학대와 친부와 공모해, 살해된 주검을 유기한 평택 신원형 사건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신군의 사건과 비슷한 고준희 양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이 일어나 국민들이 공분에 휩싸였다. 무엇보다도 준희 양은 몸도 성치 않은 상태서 폭행과 학대를 받았다는데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밖에도 부천 초등학생 피살사건, 부천 초등학생 토막살인사건,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사건,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사건, 울산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 광주 친모에 의한 8살 아이 살해 및 유기사건 등등은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친모와 친부, 양모와 양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년말연시 안방에 전해진 고준희 양의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은 한마디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해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오늘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 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부모의 이기와 욕정,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가 가져다가 주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30대 남성이 어린 딸을 학교도 보내지 않고 2년간 감금·폭행·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 이후, 은폐되었던 죽임당한 아이들과 학대 받는 아이들의 정체가 하나 둘 들어나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죽임당하는 아이들, 매 맡는 아이들, 학대받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해체된 가정, 동거녀와 생부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여기에는 동거녀의 친구, 생모의 동거남도 가담,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아이에 대한 학대와 폭력을 생각하면, 자식을 키우는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상실된 사회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뒤늦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고, 친부와 친모, 양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분명한 것은 부모의 이기와 가정의 해체, 인간의 욕정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피조물인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학대를 받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이들과 함께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죽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를 들으신다. 그리고 행동하실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사건이 목회자의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사건은 목사이며, 신학대학교 교수인 아빠와 양모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사실.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이모를 찾아 살려달라고 호소도 해 보았지만, 그 누구도 이 여학생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친부에게 연락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 누군가 이 여중생의 아우성을 듣고 행동했다면, 생명은 부지했을 것이다. 이 여학생에게는 선생님도, 이모도, 누구도 이웃이 되어주지를 못했다.  

성서는 강도만나 아니 부모를 잘못만나 피투성이가 된 우리의 아들과 딸을 향해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에스겔16:6)고 했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으면, 진실이 밝혀지고, 하나님은 이들의 ‘피의 소리’, ‘한의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와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은, 욕정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은 아들과 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공통임을 알지 못한다. 폭력, 무자비, 무정, 자기 사랑, 무관심을 일삼으며,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간다. 자식을 살해해 암매장하고, 주검을 유기한 사건들은 은폐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피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쳐 오래가지 못하고, 밝혀졌다. 성직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부인과 자식을 살해하는 세태에 이른 오늘 우리사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다. 꿈도 없고, 소망도 없다. 이런 세태 속에서 성직자들은 언론을 향해 좋은 글만 쓰라고 촉구하며, 인간성을 상실케 한다.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2017년도는 역사 속에 묻히고,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날부터 국민들에게 죽임을 당한 준희 양의 비보가 들려왔다. 고준희 양의 친부, 친부의 내연녀, 내연녀의 모가 합작해서 고양의 주검을 유기한 사건을 비롯해 어린엄마가 4살과 2살 된 아들, 그리고 15개월 된 딸을 방화로 살해한 사건, 아들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등등 계속되는 존속살인사건에 보면서 누구도 믿을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원형이 사건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고준희 양의 살해, 주검 유기사건은 오늘 일그러져 가는 현대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죽임당한 자의 아우성을 들으시는 하나님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죽임 당한 자들의 아우성소리가 우리의 귓전에 울린다. 부모도, 자식도 믿을 수 없는 삭막한 나라가 됐다. 이웃도 없고, 형제도 없다.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다. 이기주의와 욕망, 욕정만이 들끓는다. 교회는 침묵한다. 어느 기독교단체에서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를 향해 그 흔한 논평하나 내지를 않는다.

예수님은 강도만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아이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바벨탑을 쌓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오늘 교회는 강도만나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한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아이들의 ‘삶의 현장’에 교회는 없었다. 죽임 당하는 준희 양과 원형 군, 토막살인 당한 초등학생, 목사 아빠에 의해서 살해당한 여중생의 ‘피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늘도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우성친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이들의 이웃인 우리는, 이들의 아우성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에 의해서 자행되는 존속 살인은 원상태로 돌아오지를 않는다는 것을. 죽임당한자의 ‘피의 소리’, ‘한의 소리’는 하늘에 사무친다. 아무리 고달프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그 주검을 유기하고,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이 세태 속에서, 누가 생명의 자유 함을 얻을 수 얻겠는가. 생명의 존엄성을 보장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성취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그의 나라는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 통해 완성된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연말연시에 매스컴을 통해서 안방에 전해진 여러 형태의 존속살인 사건, 특히 아이들에 대한 살해사건은 국민 모두에게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가 되어 돌아왔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주검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에서 아우성친다. 이 ‘피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네 이웃 준희, 원형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마디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셨는데,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친부와 친모, 그리고 내연녀, 사악한 아들은 아이를, 아니 부모를 살해해 주검을 아무도 모르게 유기한다. 또 은폐시킨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만 있으라”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로 일관하는 고준희 양의 친부와 내연녀의 모습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검을 은폐시키기 위해서 연극까지 꾸민다. 공권력도 농락한다.

고준희 양과 신원형 군의 사건은 한마디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2017년 대한민국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면서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다. 그만큼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목사가 자신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를 살해해 주검을 암매장하고 은폐시켰는가 하면, 사랑해서 낳은 딸을 살해해 수개월동안 집안에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며, 우리사회이고, 종교계이다.

고준희 양의 이웃들은 준희 양을 비롯한 3남매가 친부로부터 폭행을 당해 집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경찰에 신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은 아동보호 단체와 이 단체의 상담을 거부한 친모 역시 준희양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친부와 내연녀와 무엇이 다른가. 폭행을 당해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아닌가. 아동보호단체나, 친모나, 이웃들은 더 이상 변명하지 말자.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다. 준희가 아파할 때 무엇을 했느냐고.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을 때 그의 아우성 소리에 왜 귀를 기울이지 않았느냐고. 병원에 오지 않을 때 왜 전화한번 안했느냐고, ‘엄마 살려주세요’를 애원 할 때 딸을 왜 외면했느냐고…. 

그렇다 준희 양의 이웃들이 작은 관심만 가졌더라도, 이와 같은 일은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2018년 무술년 새해 아침 소망해 본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 어르신들이 황혼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꿈을 꾸어 본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생명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무술년 새해에 소망해  본다.

죽임 당한 자들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맑은 귀, 깨끗한 마음을 갖자. 그리고 이들의 아우성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 땅의 피조물들이 누구에 의해서 상하는 일이 없도록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깨닫자. 죽임 당한 자들에 대한 원상회복은 없다. 그러나 죽임 당한 자의 ‘한의 소리’, ‘피의 소리’는 하늘에서 사무친다.

그렇다 생명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오늘 대한민국 곳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사랑받아야 할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며, 아우성치고 있다. 하나님은 죽임당한 자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네 딸 준희, 네 아들 원형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이것만이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킬 줄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생명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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