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 대형교회가 목회 세습을 단행한 후 올해 들어 한국교회 여기저기서 마치 봇물 터지듯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목회세습은 통합 합동 기감 대신(백석) 등 대형교단 소속의 중형 규모 이상의 교회에서 더욱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통합과 합동 등 대형 교단들은 스스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장자교단이라고 자위해 왔다. 그런 교단들이 세상에 본이 되겠다고 제정한 목회세습금지법이 코푼 휴지가 될 상황에 놓여 있다. 한때 교단 총회장을 지내고 재정 규모에 있어서도 교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온 개교회의 일탈행위를 교단이 막지 못하는 것은 교단이 정한 법이 돈과 힘 앞에서는 이미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과 치리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팽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세습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어려운 교회를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떠맡는 것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으로 여겨 다들 기피했다. 그러나 교회가 부를 축적하고 외형적으로 커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내가 생고생해서 이정도 키운 교회를 나이 들었다고 어느 날 물러나는 것도 서글픈데 생판 남에게 고스란히 다주고 떠나기 아까운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 1세대들은 대부분 맨주먹으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어려운 교회에 부임해 고생 끝에 교회를 키우고 부흥케 한 자수성가형 목회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교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겪은 고생을 자식에게는 안 물려주겠다고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하고, 그렇게 번듯한 2세 목사로 성장한 아들에게 내 일생의 작품인 교회를 물려주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된다.

대형교회들이 목회세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가 담임목사 교체과정에 혼란을 겪은 일부 교회들의 사례이다.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목사를 청빙해도 원로목사와 간격이 벌어질 경우 교인들 간에 세력다툼으로 번지게 되고 이것이 일부 교회처럼 분규로 이어질 경우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평안하려면 목사 아들을 후임자로 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을 암암리에 교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합법을 가장한 탈법이다. 아무리 당회와 공동의회의 적법한 절차를 밟아 후임을 청빙했다고 해도 목사가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시도 자체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부끄러운 짓이다.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구별하라고 가르치고, 십일조를 안 하면 하나님이 복을 안준다고 때로 윽박지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마치 자신이 일군 재산을 유산 상속하듯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세속화의 막장극인 것이다.

초대 교회 사도들은 주님에게 붙잡혀 주님을 따르다 순교했다. 큰 교회를 세우거나 큰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거나 한 일이 없다. 그들은 복음적 열정이나 설교 스킬이 모자라 교회를 키우지 못하고, 아들이 없어서 교회를 물러주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 곳에 머물러 교회를 외형적으로 키우는 것 보다 세상 땅 끝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 목숨을 다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래서 “금이나 은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가지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랐다.

목사는 구약의 대제사장이 아니다. 담임목사가 교회의 주인은 더더욱 아니다. 목회세습금지법이 있든 없든, 아들 목사의 기본권이 중요하든 말든, 교인들이 100% 찬성했든 안했든,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발상과 시도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짓이다.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이 교회와 기업체를 혼동하는 이 같은 탐욕과 무지에서 제발 깨어나길 바란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