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다윗의 고사다(삼하 7:1-17).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자기는 돌로 지은 궁궐에서 호사를 누리며 살면서 하나님은 낡고 초라한 성막에 모시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언제 백향목으로 집을 지어달라고 했더냐”며 성전건축을 원치 않으셨다. 그보다는 먼저 너 자신의 속사람 즉 도덕성을 갖추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양치는 목자였음을 상기시키며 “내가 너를 택했다”고 하신다. 주격과 소유격이 분명하다. 네 힘으로 왕이 된 게 아니라 ‘나’가 ‘너’를 왕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일개 목동이었던 자가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면 그보다 더 큰 복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왕권은 다윗 자신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윗을 부르신 분의 뜻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비단옷 입고, 진수성찬으로 입을 즐겁게 하고, 시녀들의 치마폭에 싸여 있고, 아첨하는 말에 익숙해지다 보면, 들에서 노숙하며 양떼를 돌보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기 쉽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요청하신 것은 ‘절제’이다. 신앙적으로 절제는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복종시키는 것이다. 또한 절제는 밖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변화시키는 도덕적 갱신의 힘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플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휴대폰 수명을 단축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기에서 작동시켰다는 게 아닌가. ‘무절제는 흑사병이다’는 말 그대로이다.

절제는 성품이 아니라 조절하는 능력, 균형과 조화와 화목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때문에 절제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쾌락의 노예가 되는 대신 주인이 되게 하는 자제력이다. 더 나아가 절제는 자신의 욕망을 인류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복종시키는 힘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당부하신다. 특별히 내로라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며 큰 교회 만들어 자신을 왕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이들은 다윗의 고사를 새겨볼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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