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기도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를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 문 현 미 시인
새날, 새 아침에 맑은 시 한 편과 마주한다.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시가 찌든 영혼을 씻어 낸 느낌이 든다. 잔잔한 가운데 강한 끌림이 있어서 시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시의 제목이 <새해의 기도>이니 독자는 읽으면서 시적 화자와 함께 기도를 드리는 셈이다.

새해가 되면 종교가 있든 없든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 시는 새해 벽두를 앞둔 시인이 한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쓴 시이다. 기도문 형식의 시 속에 삶의 자세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간절함이 녹아 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질주하는 속도의 도상에 있다. 성과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고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내면은 텅 비어 버리고 어둠의 터널에 갇혀 허우적거린곤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는 달리 시인이 택한 삶은 느리게 사는 것이다. 느림의 삶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느리게 살다 보면 “가장 맑은 눈동자”로 “기도하는 나무”가 되고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날 수가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옮아가며 확장되어 간다. 우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고자 하는 간절한 표현이다.

이 시는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느림의 관점에서 천상의 질서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구와 고독의 관점에서 지상의 질서계로 돌아와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고자 하는 간구로 대별된다. 고독하다는 것은 느리게 살면서 내면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속도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에서 시적 상상력의 폭이 지상과 천상을 오갈 만큼 넓고 자유롭다. 이런 자유자재는 시인의 투명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하다.

새해에는 시의 기도처럼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다. 기도는 무릎을 꿇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에 진정성에 닿아 있다. 좋은 시는 잠자는 영혼을 깨우치고 그로 인해 내면에 맑고 아름다운 자양이 깃들게 하는 힘이 있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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