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신약시대의 예배는 구약 시대의 성막 제사와 성전 제사를 뒤이어 이들의 약점을 보완 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초대 교회의 주의 만찬 예배다. 예배학에서 예배의 기초로 삼는 성경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배의 형태다. 현대교회의 예배는 사도행전에 기초를 두었다기보다는 종교개혁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 개혁가들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개혁가들은 개혁 전 미사의 중심이 바로 화체설을 주장하는 성만찬에 중심을 둔 것처럼 이를 상징설로 의미를 바꾼 후 성만찬은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혁가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성만찬이 빠진 일반 설교 중심의 예배로 예배의 형태는 있으나 중요한 주의 만찬 시간을 배체 시켰다.

사실 오늘의 한국교회 예배를 들여다보면 목회자의 설교가 예배의 노른자위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말씀 선포로 대체한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지를 모르나 종교개혁과는 거리가 먼 예배 행태를 현대교회는 진행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공통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오늘의 예배로 진보 된 것은 바로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다. 구약 예언의 필요성은 오실 메시야의 속죄 약속에 있고, 신약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의 예언을 성취함에 있다. 그런데 신약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신약의 최고 정점인데도 현대교회에서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신약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도 구약의 오실 구세주에 대한 예언과 신약의 메시야의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성취를 모두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예배 순서는 훌륭하게 짜여 인간의 성실함을 보게 하지만, 실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는 그 예배가 인간중심의 축제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목적인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은총을 베푸신 의미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신약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진실한 모습은 구약의 속죄제사의 의미와 신약의 구속의 은총에 대한 축제와 감사를 더불어 드리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분명하게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모여 신약교회의 예배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데도 현대 교회에서는 성경에는 그러하지만 하고 인간들이 만든 교리 장전과 헌법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 내려오는 전통(?)에 기대어 성만찬이 빠진 예배가 주일 예배의 정수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때가 이르기 전에 한국교회부터 성경에 없는 비 성경적인 요소나 인간이 만든 비전통적인 요소나 인간의 학문이 빗은 인본주의 신학적인 관점의 해석과 교파, 교단 마다 보관한 헌법, 교리 장전 등을 과감히 수정하거나 폐기하여 성경의 진리를 왜곡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예배는 곧 속죄에 대한 제사이며 곧 구속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축제의 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예배에는 감사와 축제는 있으나 제사가 빠져 있는 것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를 들면 예배를 계란에 비교 할 수 있다. 계란은 겉껍질, 속껍질, 흰 자위, 노른자위, 탯줄, 씨눈(생명)으로 이루어졌다. 계란은 유정란과 무정란으로 나눈다. 유정란은 생명의 씨눈이 있는 계란이요, 무정란은 생명의 씨눈이 없는 계란이다. 기독교 예배에서 일반 예배 즉 성만찬이 없는 예배는 계란에 비교하면 생명의 씨눈이 없는 예배, 성만찬이 중심이 된 예배는 계란에 생명의 씨눈이 있는 것과 비교 할 수 있다. 계란의 껍질은 예배당이요, 속껍질은 성도들이요, 흰자위는 찬송이요, 탯줄은 기도요, 노른자위는 말씀증거다. 계란의 존재는 씨눈 즉 생명을 부화시키는데 있다. 복음전도의 목적은 죄인의 영혼(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함에 있다. 기독교의 예배가 생명 구원 즉 속죄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림이다.

현대 교회의 예배에는 속죄의 은총에 대한 축제는 있는데 그 축제를 해야 할 이유인 죄로 죽었던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은총이 빠져 있는 현실이다. 신약 교회 즉 현대 교회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 정신과 신약의 속죄와 구속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축제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데 있다. 오늘날 축제에는 신경을 써 거룩한 예배로 눈에 보이게 하는데 사실 그 예배의 중심이 빠진 형태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은 오늘의 기독교 예배에서 재림 하실 때까지 죽음은 제사로, 부활은 축제로 재현되어야 마땅하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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