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러시아의 가난한 농민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1895-1925)은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오 흰 설원이여! / 가벼운 추위가 내 피를 덥힌다! / 내 몸으로 꼭 끌어안고 싶다. / 자작나무의 벌거벗은 가슴을.” 예세닌은 첫눈을 맞는 소감을 ‘더운 피’로 표현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박해현은 “혹독한 추위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의 의식을 일깨우기도 한다.”고 했다. 잠자는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시를 예세닌만 쓴 건 아니다. 이사야는 더 열정적으로 잠자는 이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사 35:1). 마치 한 편의 수채화와 같은 시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다. 이사야의 이 시는 가장 암울한 시대가 배경이다.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혹한의 땅에서 잠자는 의식을 깨우기 위해 쓴 시이다.

이사야는 이 시에서 ‘누가 그 나라에 합당한가?’라고 묻고 대답한다. “여호와의 구속함을 받은 자” “깨끗함을 받은 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임할지라도 그 자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결실이 맺는 법.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지라도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 기회는 축복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서신도 “영혼이 깨끗한 자” “진리를 순종하는 자” “거듭난 자” “썩지 아니할 씨로 된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리라”(벧전 2:1-3)고 한다. 놀랍고 두려운 말씀이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남과 북의 당국자 간에 평화올림픽을 만들자며 서로 화답하는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끊겼던 통신선도 연결했다. 연일 만나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도 남북 대화를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이번이야말로 남과 북의 잠자던 의식이 깨어나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필코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평화는 험한 길을 돌아서 가는 길임을 잊지 말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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