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에 오는 봄

진눈깨비 날리던 겨울엔
생솔가지 군불 지핀
아랫목 뜨신 맛에 살았다
이불 홑청을 벗기듯
청보리밭 살얼음 녹이는
돌개울 물소리
비늘 돋친 바람에 실리는
씀바귀의 봄 몸살
은쟁기 보습에
뭉툭뭉툭
겨울이 잘려 나간다
젖은 나목의 가지마다
불을 켜는 눈망울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개지
夢精하는 들녘
내 이제 들로 나가
더운 피 흐르는 흙살을 보듬고
꽃씨를 뿌리리라.

* 손해일 시인: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국문학박사

▲ 정 재 영 장로
겨울이라는 막연한 말을 ‘진눈깨비가 날리던 겨울’로 구체성과 선명성을 주고 있다. 탄탄한 이미지의 구축을 통해 정서의 생생함을 도모한다. 아랫목의 따스함을 ‘청솔가지를 군불로 지핀’으로 말함으로 방 온도를 촉각적으로 감지하게 해주고 있다. 설명이 아닌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다. 청솔가지라는 시각적 요소와 군불로 지핀 아랫목의 온도를 체감케 하는 촉각이미지의 동원은 공감각을 생성시켜 그 효과를 기승적으로 증가시켜주고 있다.

‘비늘 돋친 바람’도 시각화와 촉각화를 동시에 담고 있다. 역시 ‘겨울이 잘려나간다’는 비과학적인 언어도 이미지라는 시의 특성적 언어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중반부 이후도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가지’의 봄의 싱싱한 모습 뿐 아니라, 봄의 대지 모습을‘더운 피 흐르는 흙살’로 부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심미안을 통한 감명 즉 컨시트(conceit)의 생성을 위함이다.

수사기법은 언어예술이라는 시 정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이라는 말은 재주라는 뜻의 예(藝)와 기술이라는 술(術)의 합성어로, 사전 의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활동하는 일’이다. 일종의 꾸밈과 장식이다. 이처럼 시는 내용전달 이전에 미학적 창조를 위해 얼마나 기술적인 면이 두드러졌는가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는 언어소통이라는 일차적 기능에 한정하지 않는다. 창조적 표현기법에 의해 예술의 생명을 결정하게 된다. 이 작품이 그 전범(典範)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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