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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교수] 루터 오백주년과 종교개혁의 재발견 (34)
김재성 교수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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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7: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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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재 성 교수
둘째, 종교개혁이 큰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를 지도하는 지식인들과 리더들의 도움과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다. 15세기 말 유럽에서는 지식인들을 위한 혁신적인 활자 인쇄기술이 등장했다. 20세기에는 컴퓨터의 보편화가 이뤄짐으로써, 1980년대 말과 1990년도에 세계 지식정보 산업에 새로운 혁명을 도래하였던 것과 비슷하다. 활자 기술의 발전으로 루터의 95개 조항은 1518년 초까지 유럽 전 지역으로 보급되었다.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라면 이 95개 논쟁의 내용들에 대해서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더구나 기독교 성직자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논쟁점이 되었기에, 로마가톨릭교회의 핵심사항으로 떠올랐다. 루터가 발표한 논문들은 신속하게 인쇄되었고, 날개달린 씨앗처럼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15세기와 16세기 유럽은 내부적으로 긴장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황제 막시밀리언 1세(1493-1519)가 1519년 1월 12일 사망하자, 소문은 라인 강을 타고 흘러내려서 프랑스 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일곱 명의 선제후들이 실제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여 결정하는 것이 당시 관례였다. 독일에서는 트리에르, 마인즈, 콜론 등 세 지역 군주들과 보헤미아, 에르네스틴 삭소니, 브란덴부르그, 그리고 팔라티네 등 모두 일곱 명이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위치에 올라있었다. 결코 누구든지 쉽게 황제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었다. 자꾸 선정 작업이 늦어지자, 프랑스의 국왕 프랑소와 1세가 야심을 품고 있었다. 프랑소와 1세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막시밀리언의 손자 챨스 5세를 중심으로, 벌건디의 공작, 스페인 국왕 등이 결집했다. 결국, 합스부르그 후예인 챨스 5세가 영국, 프랑스 국왕 등 여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수많은 뇌물을 사용하였다는 소문들은 거짓말이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과정에서 유럽 대륙을 지배하는 권세자들의 판도가 드러나게 되었다. 유럽 대륙의 남쪽부분들은 메디치 가문에서 배출한 교황 레오 10세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왕보다는 스페인 국왕을 더 무서워하여, 주로 프랑소와 1세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선출은 외부의 도움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제후들이 모여서 새로운 왕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합스부르그 가문이 다시 선택된 것은 독일 선제후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프랑스 국왕이 선정된다면, 독일 지역의 자유는 존중을 받기 어려웠다.

제국 전체를 이끌어나갈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기에, 사실 상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가진 권력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핵심은 독일어 사용권 지역들이었다. 1519년 6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새 황제가 선출된 것이다. 샤를마뉴 대제처럼, 다음 해에 아아켄에서 대관식이 열렸다. 신성로마 제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들을 기반으로 하고,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부, 스위스의 일부를 포함하여 프랑스까지를 대상으로 삼았다. 세속 권세를 놓고서 대립하면서, 실리와 명분으로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는 유럽정치가 성행하고 있었다.

중세의 황제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 하나가 교회를 보호하고 교황권 과의 협조 하에 기독교 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선제후들과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군주들이 정치적인 평화를 보전하여 자신들의 권세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다. 결국 종교개혁은 유럽의 신성로마 제국을 양분하는 세력들 사이에 갈등을 가져왔고, 독일 지역의 군주들에게는 정치적인 독립을 제공하게 된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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