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영 목사.

3.1절 99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마냥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팀 대표로 뛸 골리 맷 달튼 선수(2016년 3월 귀화)의 헬멧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착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헬멧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그려 넣은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돼 규정위반이 됐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해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남의 나라를 침탈해 무례를 범하는 왜군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그런데도 고무줄 같은 잣대를 대어 이순신 장군의 공을 한낱 정치적인 해석으로 졸평한 IOC의 횡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령 IOC의 말대로 이순신 장군의 마스크가 정치적인 색채가 가미되어 있다면, 일본의 ‘욱일기’에는 왜 그리도 관대한 것인지 묻고 싶다. 일본의 체조 대표팀은 욱일기가 왼쪽 가슴에 그대로 디자인된 유니폼을 입고 메달을 따냈다. ‘욱일기’는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의 붉은 태양 주위에 욱광이 퍼져 나가는 모양을 덧붙여 만든 일본 군기로,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침탈할 당시에 쓰던 것이다. 말 그대로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찌를 상징하는 ‘하켄 크로이츠’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IOC는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3.4위 전에서 맞붙은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의 박종우 선수가 경기가 끝난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인 글귀를 들고 달렸던 것에 대해서는 악착같이 정치적 행위를 했다며 제재를 가했다. 도대체 IOC의 정치적인 색체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던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에 대해선 관대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바쳐 지켜낸 이순신 장군에 대해선 정치 운운하는 것이 진정 세계인의 축제를 주관하는 IOC의 역할인지 따져 묻고 싶다. 진정 누구보다 정치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IOC가 아닌가.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그것도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은 말 그대로 환희와 감동의 각본 없는 드라마가 재현되는 곳이다. 그 어떠한 이념과 정치색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이의가 없다. 다만 모호한 기준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당장 멈춰야 한다. 더욱이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평화올림픽으로 가는 뜻 깊은 현장을 그들만의 정치색으로 물들게 할 수는 없다. 이는 남과 북의 바람만이 아닌, 세계인의 바람이기도 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두고서, 위안부 합의 관련 조치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과 북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참석하겠다고 나섰다. 신성한 올림픽을 누가 정치적인 색깔로 오염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IOC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제재할 것이 아니라, 축제를 망치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를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IOC는 더 이상 ‘이현령 비현령’하지 말고, 국제기구다운 근엄함을 갖추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을 유린했던 일본의 심장인 동경에서 유학생들이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알린 2.8독립선언의 시기에 즈음해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금메달 소식과 함께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향한 소망, 왜구의 침략에 필사의 각오로 임한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다시 한 번 만천하에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경기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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