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잘산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왜 친부, 친모, 양모, 양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가.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폭력에 시달리며, 학대받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난 2017년 정유년 한해와 2018년 무술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친부, 친모, 양부. 양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많았다는 것은 안방에 전해진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묻힐 뻔 했던 아이들의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들이 수개월 지나서 드러났는가 하면, 어린 엄마의 방화에 의해서 삼남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이웃인 우리들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친모의 학대와 친부와 공모해, 살해된 주검을 유기한 평택 신원형 사건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신군의 사건과 비슷한 고준희 양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이 일어나 국민 모두가 공분에 휩싸였다. 무엇보다도 준희 양은 몸도 성치 않은 상태서 지속적으로 폭행과 학대를 받았다는데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밖에도 부천 초등학생 피살사건, 부천 초등학생 토막살인사건,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사건,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사건, 울산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 광주 친모에 의한 8살 아이 살해 및 유기사건 등등은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친모와 친부, 양모와 양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년말연시 안방에 전해진 고준희 양의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은 한마디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해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오늘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 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부모의 이기와 욕정,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가 가져다가 주었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30대 남성이 어린 딸을 학교도 보내지 않고 2년간 감금·폭행·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 이후, 은폐되었던 죽임당한 아이들과 학대 받는 아이들의 정체가 하나 둘 들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죽임당하는 아이들, 매 맡는 아이들, 학대받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해체된 가정, 동거녀와 생부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여기에는 동거녀의 친구, 생모의 동거남도 가담,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아이에 대한 학대와 폭력을 생각하면, 자식을 키우는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죽임당한 자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네 딸 준희, 네 아들 원형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이것만이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킬 줄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생명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예장 해외합동총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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