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순 임 목사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개신교를 비롯한 각계에서는 3.1만세운동 재조명에 들어갔다. 3.1만세운동의 새로운 조명은 당연하다. 그것은 3.1만세운동의 주체가 기층 민중이었다는 사실과 3.1만세운동이 외국세력(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우리민족 스스로 일으킨 자주독립운동이며, 민족해방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3.1만세운동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독립운동의 중심에, 아니 사이드에, 그 어느 곳에도 선교사들은 없었다. 오히려 선교사들은 본국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이 땅의 기독여성, 기독농민, 기독학생들을 폭도로 매도했다. 처절했던 3.1만세운동의 현장에 33인과 선교사는 없었다. 그들이 매도했던 기독여성, 기독농민, 기독학생 등 기층민중만이 자리했다.

2.8독립선언 99주년과 3.1만세운동 제99주년을 맞은 오늘, 대한민국을 둘러싼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일본 아베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은 적대적인 발언을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위해 평화헌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의 말을 보는 듯하다. 그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혔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용서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거리에는 일본차들이 질주하고, 일본의 관광명소는 한국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단체 소속의 지도자들도 ‘일본선교’, 또는 ‘세계선교’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관광을 즐기고 있을 정도다.

일제에 의해 짓밟힌 이 나라, 이 민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 바로 2.8독립선언이며, 3.1운동이었고, 항일무장투쟁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5천만 민족은 이 운동의 중심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무명 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 무명치마 휘날린 아녀자와 기독농민, 부랑인, 학생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책상머리에서 은둔하고, 일본 식민지세력에 쉽게 동화 될 때, 아니 일본식민지세력이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킬 때, 이들에게는 민족의식이 살아남아 3.1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다. 특히 여성들은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는 남편과 아들,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아들, 정신대로 끌려가는 딸들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여러 모양으로 기도했던 민족의 어머니, 생명의 어머니였다.

민족의 어머니, 밭을 갈아 가족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던 기독농민, 3.1만세운동을 전국에서 일으키는 촉매역할을 했던 기독학생들에 대한 재평가 없이 3.1만세운동 99주년, 100주년은 의미가 없다. 특히 민족의 어머니에 대한 평가는 시급하다. 오늘 한국교회를 비롯한 각계서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재조명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평가할 수 있다.

99년 전 기독교인 16명이 포함된 33인의 독립선언문이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만세운동의 현장에 없었다. 3월 1일 33인의 독립선언문은 학생들과 아녀자, 부랑인, 농촌에서 상경한 농업농민들에 의해서 전국에 뿌려졌다. 33인은 명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본경찰에 자수했다. 그들은 “3.1독립선언이 폭력이 없는 참평화운동이라고 해서 참여했다”고 밝혀, 3.1만세운동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기층민중의 운동이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었다. 다시 말해 3.1만세운동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의 민족운동이 아닌, 이 땅의 가장 보잘 것 없고 처절한 삶을 살아갔던 민족의 어머니, 생명의 어머니, 기충민중의 만세운동이었다.

예장 열린총회 초대총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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