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벌판에 독립군은 없었다. 원자탄 2방이 대한민국을 해방시켰다”

이 말은 한국교회 언론인 대표라는 한 목사가 서울 모처 한 호텔에서 가진 3.1절 모임에서 내뱉은 말이다. 동의 할 수 없는 말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일부 단체장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아멘’으로 화답했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을 상실한 한국교회 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에 대해 ‘토’를 달 필요성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목사의 말은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 말 선교사들의 의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근본주의, 경건주의, 정통주의 지배자의 신학과 이데올로기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 목사의 의식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이 목사의 말은 외세에 의해서만 한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초기 선교사 대부분은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교인들이 정치에 간여하지 말 것을 교육했다.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대신 선교사들은 ‘천당’, ‘구원’을 외치며,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아픔을 외면했다. 선교사들의 잘못을 구태여 들춰내자는 것은 아니다.

이 목사의 말은 3.1만세운동 99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경악케 한다. 분명 3.1만세운동은 한민족의 자주독립운동이며, 항일운동이고,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민족의식이 살아 전국에서 3.1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3.1만세운동의 현장에는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을 포함한 33인은 없었다. 이들은 한 식당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은 “비폭력운동이라고 해서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다”고 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비겁한 기독교 민족대표 16일을 앞세울 줄은 알아도, 독립선언문을 전국에 뿌리고, 만세운동의 현장에서 무명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 치마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 땅의 기독여성, 밭을 갈아 가족들의 식량을 제공했던 기독농민, 일본식민지세력에 의해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회를 엿보던 기독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망각했다.

얼마나 믿지를 못했으면, 학생들이 33인과는 별도로 만세운동을 준비했겠는가.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하고, 3월5일 서울역 만세운동을 기획했다. 이날 평양을 비롯한 원산 등 전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당시 일본식민지세력에게 가장 위협적인 조직 중 하나인 교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1만세운동이 1년 동안 쉬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던 동기 중 하나이다.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을 폄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독립선언문은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 목사의 말은 민족의식이 결여된 발언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지 않고, 제국주의자들의 ‘팍스’를 외치는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만주벌판에 독립군이 없었다. 원자탄 2방이 대한민국을 해방시켰다”는 발언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만주벌판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순국한 이가 얼마였던가.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의 잘못을 범한 개신교 목사로서는 구태여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인사들이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을 향해 총을 쏜 사람은 누구인가. 구태여 이름을 거론 하지 않아도 잘 안다.

이런 참담한 목사들의 발언은 오늘 우리사회에 많은 여향을 끼친다는 사실.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사의식이 결여된 것도 이런 참담한 목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오죽했으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가 귀향해서 교회를 찾지 않고, 무당을 찾아가 친구의 한을 풀어주었겠는가.

이 목사의 말은 헌화헌법을 폐기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 군국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며, 대한민국의 내정간섭을 서슴지 않는 일본의 아베 총리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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