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봄나물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은다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문 현 미 시인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강추위가 지나갔다. 입춘도 벌써 지나갔고 설도 지나갔으니 이제 곧 봄이 오리라. 마음은 먼저 봄을 기다리는데 여전히 바람은 볼을 때리고 바깥은 냉기가 싸악 감돈다. 그래도 시인은 이맘때 즈음이면 ‘눈뜨는 생명’이 있다고 한다. 아직 땅이 녹지 않아서 저런 곳에서 어떻게 꽃이 필까 싶지만 시인의 눈은 이미 언 땅에 머무른다. 시인은 사람들이 눈길을 잘 주지 않는 작은 생명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기울인다.

시의 제목이 시선을 붙드는 ‘첫 봄나물’이다. ‘첫’과 ‘봄나물’이 만나 설렘과 약동을 불러 일으킨다. 봄나물은 비록 볼품없어 보이지만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이 시는 하찮은 작은 것들을 소재로 인간 삶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작은 생명의 소중함과 그것의 근원이 되는 뿌리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다.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는 시행을 통하여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어느새 푸르러진다. 봄의 기운을 받아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작은 것들이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인하여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으게 되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하는 파릇한 봄의 질감과 리듬을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 시상이 감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전개되면서 만물이 소생하는 활기찬 봄의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라는 탁월한 문학적 수사가 이 시의 마지막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시의 긴장미를 살려낸다. 머지 않아 봄바람이 불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싹들이 앞다투어 돋아날 것이다. 봄은 소리로도 오고, 빛으로도 온다. ‘첫 봄나물’시를 읽고 나니 입안에 봄맛이 감돈다. 좋은 시가 잠자는 감각을 일깨워 온몸에 움이 트는 것 같다. 봄을 캐러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들녘에 가야겠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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