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1521년 4월 17일, 오후 4시에 창백한 모습으로 루터는 의회 앞에 세워졌다. 중앙 탁자에는 루터의 저술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

“당신이 이 책들을 쓴 저자임을 확인해 주겠는가? 이들 가운데서 전부 혹은 일부라도 취소하겠는가?”

처음에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루터는 돌아서서 24시간 하룻 동안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다음 날 오후 6시, 사람들이 운집한 대성당에 다시 루터가 세워졌다.

황제와 군주들과 추기경들, 고위 권세자들이 모여서 그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루터는 10분 동안 독일어로, 그리고 다시 라틴어로 매우 분명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가 선포한 말들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개신교회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루터는 질문에 대해서 자신의 저술들을 철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하의 위엄과 통치권으로 단순한 대답을 원하셨으나, 저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답변을 드리고자 하나이다.

만약 내가 이 책들을 철회한다면, 내가 앞으로 성취하게 될 모든 것은 교황의 횡포에 힘을 더하는 것이 될 것이요, 극악한 불경건함에 대해 마음대로 자유롭게 활동하라고 창문을 열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서나 제 맑은 양심에 의해서 확신하는 바에 따라서, 저는 교황이나 종교회의에서만 진리를 결정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미 많은 오류들이 드러났고 서로 상충되는 바가 많으므로, 저는 성경에만 의존하며, 제 양심은 성경의 말씀에만 사로잡혀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 어떤 것도 취소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양심을 거스르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며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멘!

루터의 대답은 세심하고 위엄을 갖춘 연설이었다. 대성당 내부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챨스 황제는 매우 화가 치밀었다. 이제 충분히 들었으니 회의는 종결되었다. 루터가 큰 방을 나섰을 때, 스페인 마부가 소리쳤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완수한 것과 같았다.

황제는 루터에게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을 더 연장해 주었다. 신학자들과 토론하라는 것인데, 트리에르의 대주교가 사회자로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루터의 입장이 변함이 없어서, 아무런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소득이 없이 끝이 났다. 루터가 그동안 주장해 왔던 신학사상에 대해서 루터는 황제에게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편지를 보냈다.

“저는 거룩한 말씀에 따라서 교회를 합당하게 개혁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염원이란 없습니다. 저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악평과 불명예를 견디며, 생명을 포기하게 될 것이고, 황제 폐하의 권위와 제국은 평판이 나빠질 것입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을 증거하고 고백하는 자유를 원하는 것 뿐입니다.”

다음 날 아침, 4월 26일, 황제는 루터의 마차가 도시의 성문들을 무사히 빠져나가 집에까지 안전하게 호위할 것을 캬스파르 스투름에게 명령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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