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시작됐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죽임당하는 아이들의 피맺힌 ‘한의 소리’, ‘피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잘사는 나라의 아이들은 부모의 이기와 욕정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기아와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30명의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다.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는 전쟁으로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아프리카에서는 기아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이다. 가난과 전쟁을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선포한 천국은 이들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어른들의 이기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 왜 이들은 친부, 친모, 양모, 양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왜 전쟁과 기아로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부자나라들의 음모가 숨어 있다. 함께 나누어야 할 식량을 부자나라들이 독식하고, 살상 무기를 계속해서 생산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마디로 인간의 욕심과 이기가 이 땅의 아이들을 죽임을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피의 소리’,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폭력에 시달리며, 학대받는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들려온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피의 소리’가 절규한다.

지난 10년 동안 친부, 친모, 양부, 양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이들이 300명이 넘는다. 오늘도 죽임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끔찍한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안방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묻힐 뻔 했던 아이들의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들이 수개월 지나서 드러났는가 하면, 어린 엄마의 방화에 의해서 삼남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이웃인 우리들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나님은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지금부터 1년 전 지난해 3월 친모의 학대와, 친부와 공모해, 살해된 주검을 유기한 평택 신원형 사건이 되살아난다. 지난 12월에는 신군의 사건과 비슷한 고준희 양 살해 및 주검 유기사건이 일어나 국민들이 공분에 휩싸였다. 무엇보다도 준희 양은 몸도 성치 않은 상태서 폭행과 학대를 받았다는데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해 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데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오늘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 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부모의 이기와 욕정,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가 가져다가 주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우리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30대 남성이 어린 딸을 학교도 보내지 않고 2년간 감금·폭행·학대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 이후, 은폐되었던 죽임당한 아이들과 학대 받는 아이들의 정체가 하나 둘 들어나기 시작한 것을 안다. 대부분의 죽임당하는 아이들, 매 맞는 아이들, 학대받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해체된 가정, 동거녀와 생부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여기에는 동거녀의 친구, 생모의 동거남도 가담,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아이에 대한 학대와 폭력을 생각하면, 자식을 키우는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묻고 계시다.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

죽임당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 교회는 없었다. 이들의 ‘피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들을 구해주지 못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죽임을 당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은 힘없는 아이들, 제자들에 의해서 제지당하는 아이들을 향해 “천국의 저들의 것이다”고 선언하셨다. 사순절에 전쟁과 기아, 부모에 의해 죽임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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