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예수님은 변방 갈릴리 출신으로 의도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가운데 살았다. 그곳은 예수님의 생활현장이었으며, ‘삶의 자리’였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분명하게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나라가 저희 것이다”(누가복음 6장 20절),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냈다”(누가복음 1장 52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장 28절).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태복음 10장 25절). 이 말씀은 과거나 지금이나 부자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차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제자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그들은 우선 제국의 언어, 즉 바벨탑의 지배언어로부터 해방된다. 바벨탑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지배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당시 약소국들은 강대국에 의해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언어적으로 강제를 당했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갈망하던 메시아공동체는 성령을 받음으로써 이러한 제국주의 언어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의 말로, 아니 민중의 언어로 서로 소통했다. 그리고 내적으로 제자들 가운데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 경제공동체와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자기 주변에서 궁핍한 자들을 없애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유재산을 목적으로 한 탐욕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것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한 하나님 인식,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생동적인 사귐, 매일 공동식사, 예수님에 대한 회상과 만족스러운 봉사, 공동과제를 위한 사유재산 자발적 포기 등이다.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사도행전의 공동체가 어느정도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공동체가 상당 기간 하나님나라운동의 정신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시대, 즉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던 시절에 등장하던 도시화와 함께 거기에 사는 일부계층의 사람들은 상당한 정도의 부를 누렸다. 그러나 빈곤한 삶을 살았던 다수의 농민과 하층민 계급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층계급들과 자기일치를 추구했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소유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속세의 부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자지고 있었다.

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사도적 교부들의 문헌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도적 교부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종말적 긴급성이 교회 안에서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 세상의 소유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동방종교들과 그리스 철학사상, 특히 프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동방종교들 가운데 금욕적 요소들이 교회 안에서 더욱 강화면이 있다.

한편 로마에서 활동했던 사도적 교부들 가운데 한사람인 클라이멘스의 편지에는 동방에서와는 다른 요소들이 발견된다. 클라이멘스는 ‘로마의 평화’를 찬양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의 하나님나라운동이 친로마로 변질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공동체가 정착단계에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사도적 교부들은 반유대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또 교회조직의 언급이나, 로마제국이라는 정치적 현실에서 교회의 정착화가 상당부분 전개되었다. 그러면서 교회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고, 교회는 정치적인 기구로 변질되었다. 정치와 교회는 하나가 되어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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