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분단의 현장에 교회 세우고, 평화와 통일에 봉사하라사순절, 한국교회 예수님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 하나님나라운동에 동참하자(2)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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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9  09: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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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라

2018년 사순절기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한민족의 화합에 대한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물어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주요 국가들도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유독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보수적인 정치지도자, 일본만이 힘에 의한 평화, 팍스를 노래하며,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해와 “무조건 성서에 반하는 공산주의는 싫다”는 관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남북한 아니 20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요구이며, 염원이다. 그래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양보할 수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된다. 그 만큼 민족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절실하다. 한민족의 역사적 운명을 결정짓는다. 모두가 여기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정치적인 이해와 관념 때문에 적대적인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의 당사자인 한국교회가 분단의 현장으로 들어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봉사해야 한다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세계분단의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세계교회는 세계분단을 극복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이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민족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가 분단의 중심으로 들어가 남북한민족의 화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헌데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교권주의와 권위주의, 권력지향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반통일적인 모습을 과거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민족의 신앙공동체인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과거 지배 이데올로기와 권력지향적인 편협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북한 김정은의 독재체제에 있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에 함몰돼,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에 응답하지 못해 왔다. 오히려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것은 한민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교회가 변화되지 않고서는 잃어버린 한민족선교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이제 한국교회도, 한민족의 소원인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응답해야 한다. 분단을 이용해서 자신의 교회를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한민족의 통일염원을 배신하는 반민족적인 행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국교회는 영미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분단 상황을 고착화 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통일은 이웃 나라가, 아니 동맹국이 가져다가 주는 것은 아니다. 해방이전 아니 해방이후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서 남북한민족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에서 한 번도 분단극복에 대해서 논의해 본적이 없다. 또한 국민 스스로 통일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본적이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통일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의 점유물로 생각해 왔다. 교회가 통일문제에 대해서 간여할 틈을 주지 않았다.(관련기사 5면)

   
▲ 고난당하는 예수.

한국교회 북한선교전략, “남북한 모두의 한민족선교로 전환하라”
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 평화적 민족통일을 노래하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봉사하라

한국교회는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지배이데올로기 신학과 신민지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복음의 진리인양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성경 속에 담겨진 참된 복음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지배이데올로기적인 복음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실패했다. 그 실패의 규정은 복음의 본질로부터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실패한 영미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신학과 식민지신학에서 벗어나 한민족을 새롭게 하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요구인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늘을 남한만 가질 수 없듯이, 하나님나라는 남북한 민족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사실 영미선교사들의 복음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시키고, 500년전 컬럼버스가 스페인을 떠나면서 기독교의 세계화를 부르짖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문인 “하나님은 승리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우상들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는 유럽인만의 보편적 세계질서를 뿌리내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예견했던 하나님의 세계통치 대신 철저하게 세속화된 형태로 등장했다. 이는 곧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공산주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정권에 대해서 무조건 싫다”는 관념을 뿌리내리게 했다.

문제는 분열과 갈등에 익숙해진 한국교회는, 기독교가 화해의 종교, 평화의 종교, 사랑의 종교, 생명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통일 이후 북한선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교인들로부터 헌금을 거두어들이고, 이 헌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의 한민족 모두를 위한 선교가 아니다. 통일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겠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선교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우스운 것은 북한선교를 말하는 선교사들 중, 단동, 도문, 순선 등 북한과 인접한 곳에서 북한 땅을 향해 성경책을 비닐봉지에 싸서 던지고, 북한선교를 했다고 한국교회에 보고하는 하는 선교사들도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민족의 화해와 한민족선교에 전혀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한민족의 하나 됨을 간절히 바라는 통일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또 비인간화를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분단은 여러 가지 모순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 분단모순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분단의 현장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데 매우 인색했다.

한국교회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남북한의 선교, 아니 한민족의 선교는 남한 기독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민족 전체의 맥락에서 남북한 기독교인들이 공동으로 수행해야 할 선교적 과제이다. 종말적인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역사 내에서의 분단된 세계 양편을 초월하며,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통일)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분열과 갈등, 분단된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민족화해는 기대 할 수 없다.

한국교회 한민족의 선교로 전환하라

박순경 박사는 “북한선교라는 말은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선교를 암시하면서도,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의 오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반성을 말해주지 않는다. 북한선교라는 말은 마치 북한만이 선교를 필요로 하는 피선교지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므로 통일을 위한 한민족선교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이 선교는 한민족 전체의 선교이다”고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1986년, 한길사)에서 밝혔다.

박 교수가 말하는 한민족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인 만큼, 한민족전체가 그의 복음을 새롭게 들어야 한다. 또 북한이 피선교지라면 남한도 피선교지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상응하는 한민족 스스로의 선교이어야 한다. 그렇다. 북한의 무신론은 극복되어야 한다. 또한 남한 물신상인 우상도 극복되어야 한다. 북한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는 복음의 초월성을 남북한 기독교인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남한도 뿌리 깊게 박혀 우상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정신과 문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박 교수의 말대로 서로 갈림의 상태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맞선 대치상태의 싸움마당에서 우리민족은 잘 살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국민 모두는 공감한다. 한마디로 남과 북의 대치상태에서 북한동포들이 사람답게 살지를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사람답게 살수 없게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의 대화와 평화, 그리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개신교는 분단 남북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세계교회가 그랬듯이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통일의 촉매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교회지도자들은 분단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독교계의 분단이데올로기는 해방 이전에도 아니 선교초기부터 있어 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통일문제와 민족문제가 관심 밖에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민족의 요구이며, 염원인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참평화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송기득 교수는 자신의 저서 <끝내 사람이고자>(1990년, 큰밭 기독교 학술연구회)에서 “통일의 당위성은 비단 한겨레가 하나가 되어, 함께 살자는 민족통일 염원에만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남쪽과 북쪽의 갈라짐이 오는 여러 가지 모순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 분단모순을 극복하자는데 그 뜻이 있다”면서, “남쪽과 북쪽이 갈라진 상태에서 잘 살수 있다면, 굳이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할 까닭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갈림으로 해서 우리 겨레가 안팎으로 잘 살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잘 살 수 있겠는가”라고 남북분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이것을 비인간화로 규정했다. 그리고 분단의 모순이라고 했다. 이것은 결국 가진 자와 못가진자, 있는 자와 없는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계층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남과 북이 갈라진데서 생긴 계급모순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과 북이 하나 될 때, 분단모순도, 계급모순도 극복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생명이 넘치는 한민족공동체 실현

남과 북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의 한 모퉁이에서는 아직도 통일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며,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통일문제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북한의 무신론과 통일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다. 일부 교단과 교회는 통일운동에 앞장서는 목회자 및 평신도들을 매도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빨갱이 목사’, ‘좌파’, ‘용공’으로 매도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지닌 화해의 참뜻은 없다.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요구인 남북한의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예수님의 화해에 대한 참뜻이 십자가에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요구인 민족통일의 문제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오늘의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를 저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역사현장에서 도망가는 것이다,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망각한 것이다.

교회도 민족공동체로서의 신앙공동체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한민족의 한사람이다. 우리는 한민족의 한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나, 교회나, 신학자들은 민족공동체 일원으로서 남북한의 화해와 하나 됨을 위한 민족통일운동에 봉사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실현한 인간구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바로 삶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평화’, 샬롬을 노래해야 한다. 하나님의 평화는 역사적 현존이며, 예수님의 역사현장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참평화이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무력적 통치 아래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종속관계에서 유지된 평화, ‘팍스’가 아니다. 팍스는 권력이 만들어낸 평화이다. 한마디로 신민지 민족들의 정의를 짓밟으면서 만들어낸 거짓평화이다. 화해와 정의가 실현된 상태의 평화가 참평화이다.

한민족의 통일은 샬롬이 팍스를 뚫고 들어가 변혁시켜야 한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며, 그리고 실천되어야 할 과제이다. “통일은 쌍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위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7.4공동성명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것은 평화협정, 군비축소, 반전반핵 등으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역사적 현존인 정의와 평화의 세계는 우리의 역사 현장에서 구체화시켜야 한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은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위에 이루려는 하나님나라운동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협을 비롯한 한기연, 한기총, 한교총 등 연합단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제라도 평화적인 민족통일운동에 응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민족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 방관하는 것은, 선교초기부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복음에 불순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벨탑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교회가 민족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분명,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는 민족통일의 과제로서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이고, 복음의 요청이며, 선교의 요청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복종이다. 이것만이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고, 예수님의 역사현장에서 사랑과 정의, 생명이 흘러넘치는 통일된 한민족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다.

남북한의 적대관계가 화해의 무드로 전환되고, 북한의 개방되면, 부산에서 만들어진 신발이 경부선을 타고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유럽을 거쳐 영국까지 간다고 생각해 보라. 또한 압록강 철교를 건너 중국과 시벳을 거쳐 중앙아시아, 동남아시까지 간다고 생각해 보라. 한미 FTA 재협상도 두렵지 않다. 신바람이 나지를 않는가. 그래서 사순절 마지막 주일,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봉사하자고 강하게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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