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신구약성서에서 이사야만큼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을 지닌 책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죄악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비판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기름을 바르고, 싸매고, 다독거려주는 따뜻한 감성이 66편 전편에 흐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 난 곳과, 또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사 1:2-6).

어느 한 부분만 썩은 게 아니다. 온 몸이 썩어버린 것이다.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타락한 시대에 예언자의 슬픔, 탄식, 연민이 활화산처럼 솟아오른다. 더 이상 기대도 책망도 무망한 것이련만 예언자는 상상키 어려운 인내력과 절제력으로 마지막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어질 것이다”(사 1:18).

하나님께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져 버린 인간들을 초청하시어 회생의 길을 찾아보자고 하신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인간에게로 다가오시어 썩은 곳은 도려내고, 곪은 곳은 짜내고, 상처 난 곳은 싸매어 보자고 하신다. 왜 이 최악의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인간 곁에 다가오시는 것일까? 사랑하기 때문이다. 죄악의 정도가 너무도 깊어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방치할 경우 그 비참함이 하늘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절망적인 상태를 극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며 당신 스스로 인간의 비참한 현실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절망하는 이들이 희망을 찾지 못하면, 그들의 인생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진 죄악은 깊어만 가고 있다. 우리에게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아니고는 이처럼 병든 세상을 고칠 수 없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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