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장면은 저 옛날 북왕국 지역에 있던 법궤를 남왕국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두 이야기에서 예루살렘은 다윗에게도 예수에게도 중요하다. 또 참된 평화가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은 다윗이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낡은 세계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선포하는 목적이 있다.

두 장면을 살펴보자.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은 잘 기획된 각본에 따라 장엄하고, 엄숙하고, 질서정연하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설프고, 경쾌하고, 무질서한데다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법궤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가장 흥겨운 사람은 다윗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흥겨운 사람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든 백성들이다. 법궤를 옮길 때 열광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원된 사람들이다. 무려 3만 명이나 동원되고 제물로 바친 수소와 암소만 해도 2천 마리가 넘는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영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몰려든 사람들이다. 물론 고위층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시골 사람들, 변두리 사람들, 어린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일색이다. 법궤가 무사히 다윗성에 안치된 후 다윗은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주고 축복도 했다. 통치자인 다윗이 스스로 제사장 행세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조용히 베다니로 물러가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그 한 주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다윗은 무소불위의 군주가 되어 그 뒤로 40년 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께서는 허망하게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다. 다윗은 성공했고, 예수는 실패했다. 정말 그럴까? 다윗의 평화는 피로 점철되었고, 예수의 평화는 인류의 희망으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세상은 두 가지 열정이 있다. 법궤를 자기중심에 두려는 열정이 있고, 희미하기는 하지만 십자가를 곁에 두려는 열정이 있다. 지금도 세상은 법궤를 자기중심에 두기 위해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일단 성공하면, 다윗처럼 백성들을 훈계하며, 역사까지도 변조시키는 일을 하려든다. 그 반대편에 예수께서 계신다.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신 분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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