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을 구원자 그리스도로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자신의 행위의 의를 의지하고 예수님을 단지 나사렛에서 태어난 인간 예수로 보았기에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은 자기의 의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이스라엘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은 믿음을 좇아 가다가 의에 이르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행위를 좇아 가다가 저주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의롭게 여기므로 그들이 죄인을 알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참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하여 의롭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얼굴이 검은 사람에게 거울을 주었더니 거울의 자신의 모습보고 계속 희어지려고 칼로 피부를 도려내는 행위와 같습니다. 이룰 수 없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참모습을 보게 하며 죄를 깨닫게 합니다.(롬3:20)

그들이 만약 참으로 율법을 알았다면 그들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 나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율법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이 오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행위에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의를 행할 수 있다고 믿고 율법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행위에 의지하므로 그들이 가진 의는 불완전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안식에 노동도 아니 하고 여행도 아니하고 심지어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올리거나 내리지도 않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바치고 병도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에 의를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8:11,12에서 바리세인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렇게 이들은 자신의 의를 내세움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세운 의를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 합니다. 여러 가지 자기의 선행의 의로 구원에 이르려 하기에 이들 역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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