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애 사모와 박희종 목사의 다정한 포즈.

노숙자의 대부로 알려진 박희종 목사. 박 목사는 미국과 한국 버클리중앙교회를 맡아서 쉬지 않고 주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또 노숙자 교회를 하면서 단지 먹을 것, 입을 것만을 주지 않고, 그들의 든든한 친구로서 예수 복음까지 전하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지난 해 부터는 압구정예수교회(담임 임우성 목사)에서 선교목사로 헌신하며, 또다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박 목사가 보여주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오늘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줬고, 목회자들에게도 많은 부분 영향을 줬다. 박 목사가 이렇게 목회를 하고 사역을 한 데에는 모두 이름도 빛도 없이 뒤에서 묵묵히 헌신한 이순애 사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사모의 삶을 엿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전국 교회의 사모들이 가야할 길을 예단해 본다.

◆박희종 목사의 오늘에 있기 까지 사모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부끄럽다. 특별히 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사모감으로 많이 부족하다. 남편이 주의 종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사모가 됐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나 같은 것을 왜 사모 만드셨어요”하니까, 아버지께서 “니 남편이기 전에 주의 종이니까, 사모로서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기도하다가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를 지키기 위해 쉼 없이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모태신앙인가.

△아니다. 천주교를 다녔었다. 결혼해서도 6일간 일하고 7일 날 교회가자고 하니 화를 냈다. 그런데 목사님이 아무소리 안할 테니 교회만 가자고 했다. 그렇게 목사님이 친정 9남매와 시집식구들 모두 전도했다. 한약방 하시던 아버지가 십일조를 할 정도였다. 사위 둘이 목사고 아들이 하나 목사다. 식구들 모두 집사와 장로, 권사들이다. 9남매 27명의 조카들도 모두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의 은혜다.

◆삶 속에서 기도가 생활화 된 것 같다. 처음부터 기도의 소명이 있었나.

△아니다. 서울여대 여자 총장이 버클리교회에 와서 3박 4일간 간증집회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이 3시간 동안 기도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시간 기도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다. 3시간 채우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한 번 한 약속이니까 끊임없이 노력했다. 6개월 동안 몸부림치면서 3시간 기도를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방언을 하며 기도를 하니까 3시간 금방 가더라. 그 후 미국교회 기도명단을 두고 한 시간, 한국교회 기도명단을 놓고 한 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시간, 이렇게 세 시간 기도를 하니 3시간 기도의 소명을 이룰 수 있었다. 교인들에게 기도제목을 다 받아야 한다. 그래서 명단을 적어서 기도하면 된다. 요즘에도 새벽 4시 30분에 기도한다. 목사님이 부흥회 가든지 해도 그 시간에 기도해달라고 하면 기도를 한다. 기도만큼 좋은 것이 없다.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 100% 응답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한명도 붙여주지 않았다. 다른 사모들은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 다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부엌일이며 청소 등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다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불평불만하지 않았다. 슈퍼마켓을 하면서 하루 16시간씩 억세게 일했다. 새벽 시장가서 물건 팔면서 시작했다. 문 닫을 때는 냉장고 들어가서 정리해야 한다. 11살짜리 딸을 데리고 일했다. 이 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딸도 힘들었을 것 같다.

△딸이 공부를 못하는지 알았다. 장사나 시키려고 했다. 그 딸이 일반 대학교를 갔는데, 자기가 스스로 공부를 잘해서 돈 하나도 내지 않고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폭스사에 가서 시험을 봐서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됐다. 회사에서 인정받아 상무이사까지 됐다. 그 딸이 그러더라. 엄마가 일을 시켜서 공부를 못한 건데,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 것으로 알아서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울면서 계모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딸을 기도했다. 상처 입은 것을 치유되게, 격한 마음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로도 부족하니까 무엇으로 보상을 해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딸이 결혼을 잘하길 기도했다. 미국에 있는 딸을 위해 기도 제목을 썼다. 이름과 나이, 신랑감까지 벽에다 적고 매일 기도했다. 3년을 기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셔서 딸이 좋은 배필을 만났다.

▲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헌신하며 사모 역할을 감당해온 이순애 사모.

◆마찬가지로 노숙자 사역도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노숙자 사역도 만만치 않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화장실과 부엌이 가까워 역겨운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노숙자를 끌어안고 손을 잡아주는 남편의 ‘주님의 섭리가 있으니 그저 감사하자’는 한 마디에 순종하며 노숙자 사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했다. 나중에는 기쁨으로 하니까 조금씩 불편한 것이 없어졌다. 2년이 지나니까 적응하게 되더라.


◆대형교회 사모들이 부럽지 않았나.

△대형교회도 아니고, 지하교회에서도 했지만 대형교회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줬기 때문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감사함뿐이다.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겸손이 있었다. 그 마음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다.

◆사모님의 자녀 교육도 정평이 나있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형제들도 자식한테 해준 것 없으면서 대접은 잘 잘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다 하나님이 다 키워주셨다. 아이들 모두 공립만 다 보냈다. 대학도 다 하나님이 키워주셨다. 결혼식도 다 자기들이 알아서 했다. 예수 안 믿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3남매가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주님께서 성경을 쓰라고 해서 6번 써서 자녀들에게 모두 나눠 줬다. 또 성경 읽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라고 해서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24시간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키워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녀들은 교회를 어떻게 갔나.

△금요일마다 애들을 교회에 데려갔다. 아이들이 군대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투덜대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모두 성경을 돌아가면서 한글로 읽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장난치다가도 순서를 틀리지 않고 곧 잘했다.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줬기에 아이들은 순종하게 됐다.

◆오늘을 사는 전국 목회자 사모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짝을 지어주셨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자가 발버둥치고 하는 일이 있고, 사모가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기도로 밀어줘야 한다. 집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는 등 일을 사모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사모가 이래저래 좌지우지하는 것은 안된다. 요즘에는 사모가 다 목사가 되어서 힘들다. 둘이 합쳐도 될까 말까다. 사모가 목사님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앞에 가서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내 남편이기 전에 주의 종을 도왔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도 빛도 없이 해야 된다는 말처럼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 무슨 일에 있어 교인들에게 전화하거나 동조하거나 그러지 말고, 목사님에게 맡겨야 한다. 사모들 때문에 분란이 생겨 교회가 깨진 사례가 많다. 사모는 목사 뒤에서 밀어주고 기도로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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