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동 규 목사

1920년대는 한국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고난주간에 과거 한국교회의 굴절된 역사를 본다. 당시 한국교회를 지도하던 선교사들은 한민족의 새로운 시각이었던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당시 남산에는 신사가 세워졌고,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와 젊은 청년들이, 여기에 매혹되어 갔다.

당시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청년들이 읽는 잡지들은 ‘진보된’이념들, 혹은 공산주의 이론들로 가득차 있었다. 기독교의 교리들은 문제화되고 있다. 1926년 감리교 선교보고서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 대부분은 공산주의 정신의 영향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독교의 변호론적 필요성들이 오래 전부터 조선교회에서 대두되고 있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 다시 더 요구된다. 또한 공산주의가 널리 퍼져 있으며, 젊은이들의 사회주의적 무신론적 단체들이 있다. 그런데 이 단체들은 때때로 교회를 떠난 크리스천에 의해서 지도되기도 한다. 한편 민족주의 의식이 좋은 또는 악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마음을 개방해서 참과 거짓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27년 클라크는 이렇게 보고했다.

“오늘날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유래된 사상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는 한국을 대면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상들의 대부분이 오류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경제적 압박을 의식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로서 그 상황의 정치적 측면들에 대해서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의 존재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우려한다. 만일 그러한 사회주의 사상이 실현된다면, 소수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겪을 불의와 억압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란 클라크에 의하면 바로 경제적 상위층을 말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식민주의 지배자측과 결부된 기독교 선교의 문제를 전제하고 있는 관점이었다. 당시 일간지들은 연속적으로 유물론철학을 소개하고 기독교를 비판했다. 1927년 양주삼은 경종을 울렸다. “교회는 위급한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 태도는 이전과는 다르다. 찬양하기보다는 비판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기독교는 이러한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잠재력의 민족사적 의의, 선교사들과 한국교회에 의해서 거의 상실된 그 의의는 깨어난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재포착 되었고, 재포착되고 있다. 이대위는 1924년1월2일부터 7일까지 7회에 거쳐 <기독신보>에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이대위는 “예수님이 현대에 계신다면, 막스 이상으로 자본주의의 해악을 책하셨으리라”고 했다. 같은 해 2월13일자 <기독신보> 사설에 동일한 주제 내용의 글을 실었다.

“우리는 영적주의의 종교를 반대하는 현대사회조직을 가장 선미하게 생각하고, 종교와 경제행위와 분리하여서 개조를 개혁하지 아니하는 현실주의 교회신자 … 이러한 교회에서는 경건을 구실삼아 엄숙한 사회적 죄의 지적을 게을리 하여 참 개조의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 착취는 그렇게 악한 것이 아니오 자본주의의 당연히 취득할 것으로 생각함으로 죄악이 되지 아니한다. 하여 회개하기를 바리지도 아니 하는도다”
이 사설은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기독교와 그 죄의식의 문제점이 지적되어 있다. 관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2018년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맞은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장 개혁선교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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