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우리는 새로운 세기 21세기와 더불어 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동방교회 500년, 서방 카톨릭교회 1000년, 유럽교회 500년의 시대를 지나 제3세계 교회들, 즉 제4교회의 시대를 맞이했다.

시대적으로 보면 귀족사회를 기반으로 한 500년의 동방교회, 카톨릭의 1000년 시대, 부르주아적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개신교 500년이 지나가고, 이제는 제3세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교회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을 기초로 해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부유한 사람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유럽교회와 미국교회를 보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교회들이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교회는 이미 멀쩡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는 아니다. 유럽교회는 역동적인 교회를 거쳐 치유적인 교회로 전환되었다. 서양교회는 찾아오는 부류가 대부분 의지 할 곳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사회적 약자들이 교회를 찾아오고 있다. 그들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불편한 장애인들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시설이나, 재활센터 같은 곳에서 지내고 있다. 정신적 질환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교회의 시설서 지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회의 시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기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 없이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가족들의 보살핌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설교에 은혜를 받고, 외로움을 달랜다. 과거 2000-3000명 모이던 교회나, 성당은 요즘 20-30명 모인다.

이들은 신앙이나, 그리스도교적 삶의 진리를 추구하러 오기보다는 일주일에 한번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자 한다. 물론 이들에게 종교적 동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회적 동기가 강하다.

교회는 사회적 낙오자들이나, 노약자들을 돌보는 것을 당연한 임무로 생각한다. 성심성의껏 돌봐준다. 성서에는 오늘날 서구교회의 현실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는 쓸데 있다”(누가복음 3장 31절)

신학자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음모로 재판을 기다리면서 교회가 변두리 인생들의 농성장이나, 치유의 장소를 넘어 사회나 세계를 변혁시키고, 역동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임이 될 수 없는가를 고민했다. 그것은 교회가 변두리 인생들을 돌봐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계를 보다 인간다운 세계, 즉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활동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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