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주일은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신 부활절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셨다.

전국의 교회들은 연합으로 또는 지역, 개교회 별로 부활절을 기념하는 예배와 각종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올해는 교단들이 연합해 서울 연세대 노천광장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는데 한기연과 한기총 등 연합기관들이 별도의 연합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함에 따라 사실상 하나의 부활절연합예배가 드려지게 되었다.

이번 부활절에 한국교회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변화되어야 한다. 그냥 말로만이 아니라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이 요구된다. 세상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기독교는 옛 관습과 낡은 구습에 매여 세상과 점점 괴리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국교회 전체의 위기 수준의 심각성을 일깨워 준다.

예수님은 나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담을 허셨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영원히 해결할 수 없었던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관계의 복구를 의미한다.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불평등과 장애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정치와 이념과 사상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 배타주의가 아닌 이 땅에 참 평화를 완성하라는 미션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동안 전쟁 위기설을 몰고 오며 적대적인 냉전 사고의 틀 안에 갇혀있던 남과 북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무력 대결이 아닌 대화와 교류로 화해와 용서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부활절에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가 유엔의 제재를 풀고 더 강력한 핵무장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벌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나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구름이 이번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로 인해 어느 정도 걷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과제는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되고 미중일러 등 강대국간의 이해득실에 따른 정치외교적 역학구도에 의존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평화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샬롬’이 한반도 전역에 정착하도록 우리가 힘쓰는 일이다. 부활의 증인이 우리가 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미투’운동도 한국교회에 특별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한 불의와 불법, 권력에 의한 억압과 성적 착취, 인권 유린이 기독교와는 무관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언론을 통해 일부 성직자들의 성추행이 보도되고 있는 마당에 내 교단 내 교회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언제까지 입과 귀를 닫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인가. 교회들은 그동안 은밀하게 감춰진 죄악의 그늘 아래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피해여성들과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이 2차, 3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서둘러야 하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려면 지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님이 사회 형상을 통해 주시는 경고를 무시하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기독교는 촛불민심이 가져온 변화된 세상에서 진로를 잃고 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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