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새벽

차마 믿어지지 않고 아무도 본 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총총한 별밤에 무덤은 비고
먼뎃바람 같은 아스므레한 기류만이
설핀 갈밭인양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랍비여 부르던 어느 한 사람조차
함께 해 드리질 않아
밤새워 드리시는 기도에도 홀로이셨던
겟세마니의 산상이며
닭 울기 전 세 번을 모른다 했던
당신 사랑하신 시몬 베드로며

높으신 고독은 이왕에도
순히 다스리시던 당신의 그림자였거니
부활의 새벽엔들
고요만이 큰 물인양 넘쳤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죽음은 멎고
슬픔은 쉬고
생명은 저마다 무성하라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울려 드리는 종소리 하나도 없이
그 전날과 꼭 같은 새벽이었거니

우람한 축제일수록
조촐한 표지로 잠잠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

▲ 문 현 미 시인
비아 돌로로사! 고난으로 점철된 슬픔의 길위에 계시는 그분이 떠 오른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신 그 길. 예수께서 자신에게 일어날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믿는 사람들의 거처를 예비하시기 위해 걸어가신 숭고한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부활의 새벽이 있다.

김남조 시인은 구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창작에 대한 열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시인이 청춘의 때에 지은 시이기에 더욱 놀랍다. 1958년『나무와 바람』속에 들어 있는 시로서 젊은 시인이 신앙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한 시이다. 대개 신앙시는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믿음이 앞서기 때문에 문학적 수사를 선택하지 않게 된다. 신앙적 내용이 강하면 문학성이 약해지고 문학성이 주를 이루면 신앙적인 부분이 약화된다. 그래서 이 둘의 조화를 이룬 좋은 시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부활의 새벽」은 신앙적 내용을 문학의 틀에 담아 미학적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시 전편에 흐르는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다”라는 시행이 중심축이다.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속에 있고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차마 믿어지지 않고 아무도 본 이 없었”다고 시의 첫 행에서 밝힌다. 인간적으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임을 강조한다. 3연에서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던 그 누구도 십자가 처형을 막지 않았고 오히려 동조했다는 사실과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홀로 기도하시던 모습과 예수께서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배반할 거라는 걸 아신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예수님은 철저하게 고독하셨다는 걸 암시한다. 이 시의 매력은 4연에서 “높으신 고독”, “당신의 그림자“, ”부활의 새벽엔들/고요만이 큰 물인양 넘쳤습니다“와 마지막 연에서 부활을 ”우람한 축제“라고 한 순도 높은 문학적 비유에 있다. 그리고 압권은 5연의 3행 ”죽음은 멎고/슬픔은 쉬고/생명은 저마다 무성하라십니다“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문학적 함축으로 인하여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다. 부활의 새벽이 있기에 우리 삶의 새벽이 있고 희망의 길도 열린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사망 권세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찬미하고픈 마음이 물밀 듯 밀려온다. 좋은 신앙시는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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