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상례식[喪禮式 = 장례식(葬禮式)]이라 해야 할까? 성안예식(聖安禮式) 이라 하는 것이 좋을까? 지난 호에서 “임종식(臨終式)을 이제 부터는 성천입식(聖天入式)이라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상례식(喪禮式) 또는 장례식(장례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이러합니다. 상례식의 상(喪)은 “잃을 상, 복 입을 상”이라 한다. 또한 장례식의 장(葬)은 ‘장사지낼 장“ 곧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절차“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예식서에서 장례식을 상례식이라 한들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안식에 들어가셨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 가셨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셨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셨다.“는 등의 의미로 진행되는 모든 절차를 일컬어 상례식[喪禮式 = 장례식(葬禮式)] 보다는 성안예식(聖安禮式)라 함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천국환송예배(天國歡送禮拜)라는 말도 간간히 사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신학자들 간에는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다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됨”으로 “거룩하고도 영원한 하늘나라(천국)에 이미 들어갔음으로”(눅 23:39-43; 고후 5:1-2 등 참조), 천국환송(天國歡送)이라하면 한 발 늦은 표현이 될 수도 있음으로, 필자로써는 “이미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셨다”는 “성천입식(聖天入式)”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요 몇 일전 Facebook(페이스북)에서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학자요 목사님이 성안(聖安)에 들어가셨다는 보도와 함께, 위로를 위한 화환들이 사진으로 올려져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 화환들에는 “근조(謹弔) 또는 삼가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는 등이 필자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보내신 분들의 면면을 보니 신학계의 중심인물들이라는데 아쉬움을 더욱 크게 느꼈습니다.

근조(謹弔)라 함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슬픈 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한 고인(故人)이라 함은 ”죽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또한 명복(冥福)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을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위로의 말이라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삼가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하는 것에는 왠지 개운치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오랜 전통과 문화 속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말을 하루아침에 바꾸려한다면 무리가 있음도 인정 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의 문화가 충돌 할 것이 두려워 변화를 꺼린다면 우리는 영원히 성경이 증가하는 은혜와는 다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자가 저승(하늘)에서 복을 받도록 기도한다.”고 한다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습인 연옥(煉獄)교리, 사상 등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하고 말입니다.

따라서 앞서 거론 한 바와 같이 필자는 부활소망신위(復活所望信慰) 곧 “부활의 소망의 믿음으로 위로 받으세요(합니다)!” 하는 내용으로 화환을 보낼 때나, 위로금을 전할 때의 봉투 등에 기록을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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