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지현 검사가 자신이 당한 검찰 내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의 불씨를 당겼을 때 뒤에서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 시작된 ‘미투’가 문화예술계로 번져 유명 연출가 배우 연예인들이 줄줄이 대중 앞에 고개 숙일 때, 교계도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의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해야 했다.

그런데 기독교계는 요즘 오히려 별거 없다는 식으로 다시 고개를 세우는 분위기다. 곧 뭐가 터질 줄 알았는데 한두 명 거론되다 마는 정도로 ‘미투’의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폭풍전야와 같던 교계에 ‘미투’의 불길이 확 옮겨 붙지 않아 안도하는 사람들조차 기독교계가 ‘미투’ 청정지역이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당한 끔찍한 기억을 개인 신앙에 결부시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한다.

그동안 교계는 소위 무인가 군소교단 출신의 일부 무자격 목사들이 한국교회의 품격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고 간주해 왔다.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비윤리적 사건의 배후에는 정상적인 신학 교육과정 없이 목사를 배출하는 무인가 신학교, 또는 이단 사이비집단이 있다며 이들 전체를 싸잡아 비리의 온상인양 취급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한국교회 95%라고 자화자찬하며 출범한 단체의 모체 격이라 할 수 있는 한국교회 교단장회의는 무인가 신학교 교단은 철저히 배제하고 교육부 인가받은 신학교 교단만을 회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들이 언론을 향해 말끝마다 내뱉는 ‘공교단’이라는 단어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사교단과는 엄격히 구별해 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교단’은 한국교회가 부여한 대표성을 위해서라도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고 높은 도덕 윤리적 책임감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최근에 발생하는 목사들의 비윤리적인 추문은 대부분 ‘공교단’ 중에서도 소위 ‘성골’에 꼽히는 주요 교단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수많은 여성 청년들을 성추행해 사회법의 단죄를 받고도 거꾸로 교단 안에서는 보호막이 되어 교회를 옮겨 여전히 왕성한 목회활동중인 목사, 목회와 교단신학교 교수를 병행하며 자신의 친딸을 학대 폭행에 살해한 후 1년 가까이 시신을 방치해 오다 적발된 목사, 이들은 모두 한국교회에 소위 ‘성골’ 교단의 목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뿐이 아니다. 한국교회 장자교단을 자처하는 예장 통합의 경우 소속 교회의 목회세습 문제로 교단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 최근 한 달여 사이에 교단 목사 4명이 연달아 성추행,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미투’ 가해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교단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판이다. 이들 성범죄 목사 중에는 교단지에서 모범 목회자 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신망이 두텁고 전도유망한 목사도 포함돼 있어 교단이 받는 충격파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통합측은 “노회 안에서 이런(성범죄) 사례가 발생할 경우 엄정하게 처벌하라고 노회에 지시했다”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 외에 ‘공교단’으로서 그 이름에 걸맞는 책임있는 자세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교단은 최근 목회세습 문제로 인한 고소 건을 총회 재판국에서 진통 끝에 판결하자 해당 노회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막바로 반박 성명서를 일간지에 발표함으로써 총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이다.

목사들의 성범죄는 교단 얼굴에 먹칠하는 수준을 넘어 전도의 문을 막고 한국교회에 회생불능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믿었던 성직자에게 당한 씻을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고 일부 목사들의 그 어떤 일탈행위도 무조건 눈감아주고 감싸주고 보는 비뚤어진 동지의식이 한국교회를 망친다는 것을 소위 ‘공교단’의 지도자들은 깊이 깨닫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