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제주4.3사건 70주년 추념식이 제주평화공원에서 열렸다. 1947년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당시 제주인구 30만명의 10%인 3만명이 국가에 의해서 희생을 당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정부의 공식 피해자만도 1만4천명이며,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까지 합치면 3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좌•우 이념의 대립,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제주도민 10%가 희생을 당했다는데 슬픈 역사이다.

당시 부모의 손을 잡고, 산속에서 숨어 지냈던 꼬마는 백발이 성성해 70년이 지난 3일 추념식에 참석해 당시를 증언했다. 4.3 생존희생자와 제주도민들은 70년 동안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고 국가와 국민들에게 물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중산간 마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돼 95%가 불타 없어졌다.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하기도 했다.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숨죽이며 살아야만 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다.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들이 각 분야에서 끊이지를 않고 계속되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은 일어났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다. 그것은 문단에서도 계속됐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등은 묻혀 있던 4.3을 세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분명히 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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