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바울 목사.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이중 5명은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전 국민의 가슴에 커다란 멍을 만든 세월호 사건이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 채 꽃도 펴보지 못한 학생들과 부모 같은 마음으로 이들을 인솔한 교사들, 그리고 저마다 삶의 전선에서 정직하게 살아간 이웃들의 꿈을 짓밟아 버린 세월호 4주기를 맞았다.

잊고 싶어도 지우고 싶어도 가슴 속에서 이미 눈물이 쥐어짜져 나온다. 첨단을 자랑하던, 세계 경제대국을 자신 있게 말했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4년 전 무심하게도 우리 곁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의 이기와 욕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악이 꽃향기마저 이른 풀냄새 가득한 우리 아이들의 빛을 삼켜 버렸다.

진실을 알기 까지 얼마나 돌고 돌았는지. 선체 인양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통을 어떻게 참았는지. 아직도 뼈 조각조차 찾지 못해 여전히 봄을 앞둔 겨울에 머물러 있는 유가족들의 심정은 다시금 세월호 참상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동안 국가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탄핵됐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전직 대통령들의 안타까운 비보(?)가 들려오기도 했으며, 세상이 한꺼번에 뒤바뀌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꿈틀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의 오욕의 역사를 벗어나 화합과 일치로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구태와 손을 잡은 세력들이 존재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꽃다운 나이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을 여전히 직시하지 못하고, 정치적 프레임에 넣으려는 속셈들에 구역질이 올라온다. 4주기를 겸허한 자세로 추모하지는 못할망정, 노란 리본 하나 달았다고 진보와 보수가 ‘어쩌고저쩌고’ 잡음을 내뱉는다. 세월호에 대해 속에 담긴 말 한마디 했다고 용기가 ‘있네 없네’를 떠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사건은 인간의 욕심이 자아낸 인재(人災)다. 진보와 보수의 틀 안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때가 아니다. 누가 왜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갔느냐다. 그리고 왜 그들을 구하지 못했느냐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물을 때이다. 우리 어른들은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올의 의혹도 없이 낱낱이 밝혀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두 번 다시는 이 땅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4주기 추모의 현장이 6월 13일 지방선거를 위한 유세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온전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온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혹여나 정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자리가 되어 얼굴 한 번 쑥 들이밀어 지나쳐 갈 것이면 아예 발도 붙이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그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정당 이미지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도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길 기대한다. 4년 전 세월호가 침몰할 때 함께 입을 닫아버렸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길 바란다.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라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말로 현혹하지 말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세월호의 진실이 거짓 없이 밝혀지길 외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준엄하신 경고이자 명령이다. 가진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자, 소외당한 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임을 명심해야 한다.

예장 호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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