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하나님은 화평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당신께 도전하고, 품을 떠나 원수가 되어 버린 인류를 왜 친히 찾아 오셔서 속죄하시고, 당신과 화목하자고 하시는가.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의 이미지를 문 밖에 서서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로 묘사하신다.(눅 15:20)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말씀으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하며 교제하며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다투고, 미워하고, 싸우고, 등 돌리고, 원수 맺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 인간의 실존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를 만들고자 하셨다.

평화를 깨고, 사람 사이를 원수 되게 하고, 서로 상처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다. 사탄은 대립시키고, 분열하고, 미워하고, 원수 짓게 하고, 죽이는 것들이 본업이다. 우리 조상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한 이간 자가 사탄이다.

아담 부부로 하여금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900년이 넘도록 인고(忍苦)하며, 갈등하며 살게 한 장본인이 사탄이다. 성경의 고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900년을 넘겨 살았다. 한번 상상해보라. 그렇게 단꿈을 꾸며 에덴동산에서 유복하게 살던 부부가 그 동산 밖으로 쫓겨 나와, 땅을 파며, 더위와 싸우고, 추위와 싸우는 등, 환경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하루하루를 견디듯이 900여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겠는가.
마귀가 계속 이들의 마음을 충동질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담이 부인을 향해 짜증내고, 원망하고, 구박하면 하와는 남편을 향해 속죄하듯 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지음 받은 때로부터 900년 이상을 부부로 살았으니 아마도 오래오래 싸웠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두었다. 사탄이 하와를 충동했듯이 가인을 충동질한다. 가인이 동생을 질투하여 돌로 쳐 죽여 살인하는 비극이 그 땅에 일어났다. 인류는 이 땅에서 죽음을 보았다. 사탄은 더 교묘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등을 돌리고, 서로 원수지면서 살고 있는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갈등은 더하다.

부부 사이가 더하고, 형제 사이가 더하고, 오랜 친구 사이가 그렇다.

소유가 많거나 지식이 쌓이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문명이 크게 발달하고, 많이 가졌는데 마귀를 더 심하게 닮아간다.

1980년대에 미국대법관을 지낸 워랜 버거는 세상이 탄식할 만큼 갈등이 폭발하는 이유를 '가정과 교회가 그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가 교회되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웬만한 충돌이나 갈등은 이해관계가 얽혀도 서로 양보와 용서로 풀어 나가고, 할 수 있으면 말씀과 믿음으로 해결했고, 교회에서 기도로 해결 했었다. 그러나 교회가 말씀을 떠나 교회됨과 도덕적인 힘을 잃고, 가정들이 권위를 상실하므로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갈등과 분쟁을 다 법원으로 끌고 간다고 했는데 어디 미국만 그런가?
회복할 방법이 있기는 한가.

십자가의 복음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다. 복음이 증거 되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게 되고, 수평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능력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 된 자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하신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된다.

에베소서 2:16절이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는 원수 된 관계를 소멸시킨다. 17절은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의 담을 헐고, 먼 데 있는 자나 가까이 있는 자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시다.

골로새서 3:13. 14절은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신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어떤 이유나 문제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고, 갈리게 되면 지체하지 말고 피차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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