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야고보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살라고 한다(약 5:7-10). 한국은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뚜렷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1년에 두 차례 우기가 있는데, 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에 내리는 ‘이른 비’가 있고, 4월과 5월에 내리는 ‘늦은 비’가 있다. 농부들은 전적으로 이 비에 의존해서 농사를 짓는다. 때맞춰 씨를 뿌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기후 조건으로 인해 ‘준비하고 기다림’이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삶의 양식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살라고 한 것이다.

주의 재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사야의 표현을 빌리면 사막이 옥토로 변하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들이 사슴처럼 기뻐 뛰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희망으로 오신다(사 35:1-10).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희망이 실현되는 게 아니다. “여호와의 구속함을 받은 자” “깨끗함을 받은 자”라야 한다. 예언자가 희망을 말하는 이유가 있다.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자포자기 가운데서 사는 인생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시기 위해서다.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낡은 생활을 버리지 못하면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소멸되지 않고, 그 복된 생명이 존속된 것은 고단한 삶을 희망으로 해석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속함을 입은 자”란 절망을 희망으로 해석하고,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털어 버리고 일어선 자들이다.

자기 인생을 변화시킬 기회가 올지라도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세상 탓만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희망이 없는 사람은 그 가슴에 세상을 향한 분노로 가득하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화를 품고 산다. 그래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 5:10)고 했을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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