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 잘 믿고 이 땅(세상)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자녀)의 복을 누리다가 종국에는 “죽었다~”는 등의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겠는가? 그러함에도 별 관심 없이 전통문화의 장례식[葬禮式. 상례식(喪禮式)] 틀 속에 생명[生命. 생동하는 신앙(生動하는 信仰)]의 기독교를 죽음[사망(死亡)]에 가두어 놓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예(禮)를 표하는 전통문화도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救援)과 관계된 표현들은 성경(聖經)이 증거 하는 가르침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2018년 4월 10일 Facebook(페이스북)에는 “먼저가신 스승 OOO 교수님을 그리워하며 유족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 “어제 소천하신 고 OOO 목사님은 참 좋은 교수님이셨습니다.” 라는 등의 내용이 보도문 형식으로 오려져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쓰신 분은 한국 보수신학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조직신학 교수님 이라는데 그 심각성을 크게 느꼈습니다. 물론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과 애절함, 그 유가족들을 향한 위로의 마음이야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아니 세계 기독교계를 짊어지고 갈 후학들을 가르치시는 분이기에 1%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천(召天)이란 무엇을미 입니까? “하나님(하늘)께서 부르셨다?” 물론 그 함의(含意)는 아주 다양성과 함께 그 폭을 아주 넓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서정[救援의 序程(order of salvation)]을 생각하면, 소천(召天)이라하는 표현에, 그 시점이 애매모호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됩니다. 이는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별 의식 없이 애매한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소식을 전하거나 위로의 말을 건넬 때에도 신앙적이어야 함을 숙고(熟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필자는 이미 말한바 있습니다. 근조(謹弔)라 함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슬픈 마음을 나타냄” 또한 고인(故人)이라 함은 ”죽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명복(冥福)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을 일컬어 하는 것.

명복[冥福. 冥(어두울 명. 어두울 면. 1.어둡다. 2.밤. 3.깊숙하다. 4.하늘. 5.바다) =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란 뜻으로, 기독교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을.

따라서 “명복(冥福)을 빕니다. 근조(謹弔). 소천(召天). 힘내십시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등보다는 아래와 같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부활소망신위(復活所望信慰)
2. 부활의 소망으로 이겨 냅시다.
3. 부활의 신앙으로 이겨 냅시다.
4. 성복(聖福)을 누리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5.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리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6. 성안(聖安) 중이심을 믿습니다!
7. 거룩한 안식(安息) 중이심을 믿습니다!
8. 다시 만나게 뵙게 될 줄 믿습니다.
9. 더 좋은 본향(本鄕)에 계실 줄로 믿습니다.
10. 영원한 하나님 나라(하늘나라. 천국)에 들어가신 줄 믿습니다.
등 성경적 위로(慰勞)를 해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다음호에 계속>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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