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너를 위한 애가(哀歌)

내가 너를 좋아할지라도
그러다 또한 미쳐
너를 사랑할지라도

지금은
이따금 생활 언저리 저편서
착하디 착한 가슴을 열어
허허로운 마음으로 한껏 웃어 보라

어머니의 초라한 아기 방에서 태어나
울음 한번 제대로 배앝지 못하고
낡은 잡지(雜誌)같은 손으로 물속을 헤메이던
내가 사랑한 사람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사랑하였을
나의 사람은,

팽목항 갈매 빛 능선 위에서
깊은 달변(達辯)의 잔을 비우며

미친 가시내(小女)에겐 꽃의 의미로
철없는 머슴아(少年)에겐 꿈의 의미로
.....
애너벨 리의 고운 선율로
기다림의 창변에 서다.

아아!!
새파랗게 날선 너의 거친 호흡이
고통스런 아비의 두 눈에 꽂혀
약하디 약한 어미의 심장을 읽으며, 읽으며

그러다 너의 이름으로 내가 살아서
축복처럼 내가 살아서
정녕,
모든 영혼의 가비여움까지를 사랑하여라.

지난 일상을 스친 통곡의 파편들을 쓸어 모으면
파도는 푸르디 푸른 은빛 머리카락 빗겨 넘기고
너는 일월(日月)의 커턴 너머
떨리는 애증(愛憎)으로
네 개의 성상(星霜)을 단숨에 긋고

차디찬 봄바람에
바다 갈잎 서걱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남겨두고 떠나갈 너의 영혼은
이젠 다시
하늘을 치어다 보지 않아도
늘 푸르른 ....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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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사에 대하여 교회가 객관적으로야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그러나 알토란 같은 생명을 이유없이 무참하게 숨지게 한 사회적 책임의 가장 선봉에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비판론자들이 맹비난하는 소위 '시체장사'와 같은 볼썽사나운 면이 있다고해도 그것은 사태수습과정에서 나타난 과도함이지 참사의 본질이 아니기에 교회의 시선은 참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무한 책임과 영적 각성에 있어야 한다.

이 참사 사태 수습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세월호 유족들이다. 비록 그들의 요구가 과도하여도 사회는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하며 유족을 예우하고 설득해야 한다. 사회가 유족들과 충돌하여 여론으로 유족들을 이기면 그것은 인간성의 가치를 존엄하게 여기는 민주사회의 근간을 상하게 하는 슬픈 일이다. 민주사회는 상처받은 이에 대한 공동책임이 그 미덕중에 하나이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끝까지 유족들 편에 서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일부 선량한 사람들, 참사의 아픔에 동조하면서도 그로 인해 삶이 힘든 이들의 감정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연히 그들의 정직한 감정의 표현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 죽은 자의 기세가 산 자의 의지를 꺽을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면 산 자에게 엄습해오는 현실적 고통과 미래적 불안을 해소하기 힘들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상심한 선량한 이들의 상한 감정을 세밀히 보듬어야 한다.

교회는 이 참사와 수습 과정 그리고 향후 조치를 책임진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추상같은 원칙론적인 질책과 감시에 추호의 양보가 있어서는 안돤다. 정략적인 악용, 은폐, 축소, 조작, 과대포장, 확대재생산, 괴담 등등 세월호 참사를 소재 삼는 모든 정치적 술수와 이념적 갈등의 희갱제물로 삼는 행위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 참사의 수습과정이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 밝혀지도록 그리고 악용의 세력이 발붙히지 못하도록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견고한 자세를 호소한다.

다시한번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유족들에게는 진심어린 위로를, 우리 모두에게는 서로의 격려가 있기를 구한다.
주의 평안을 빌며...!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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