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용서는 단순히 시간과 함께 잊어버리는 망각의 행동이 아니다.

내가 용서받은 사실 때문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결단이 그리스도인의 용서다.

용서에는 희생이 따른다. 용서는 마치 받을 돈을 받지 않기로 하는 것과 같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용서는 손해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다.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고, 한 마디의 불쾌한 말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아무도 용서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용서받지 못한다.

용서는 담을 허는 것과 같다.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긴 장벽이 어느 날 무너졌다. 무너져 부서진 장벽의 잔해와 많은 파편들을 치워야 한다. 용서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은 앙금과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있기에 주님은 “피차용서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하신다.

화평을 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좋은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다. 여기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헬라어 '스푸다조(spoudazo)'다. 로마시대는 피에 굶주린 군중 앞에서 검투사들이 싸우다가 어느 한 사람이 쓰러져 죽임 당하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지르며 즐기는 잔인하고 괴악한 문화가 있었다. 자기 순번이 돌아와 무기를 들고 검투장으로 들어가는 검투사에게 그를 훈련시킨 조교가 뒤에서 '스푸다조!'라고 외친다. '스푸다조!' '죽지 않으려면 죽을힘을 다해 싸우라.'는 말이다. 이 단어가 에베소서 4:3절에 그대로 인용되었다.

인간관계는 조금만 잘못하면 금이 가고, 깨지는 유리그릇과 같다. 한 몸이 되어 사는 부부도 예외이지 않다. 우정과 신뢰를 쌓는 데는 많은 세월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1분이면 족하다. 서로 잘하려고 애쓰다가 원수 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정성을 다해 이 예민한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노력 없이 피스메이커가 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다.

마태복음 5:22절 이하에 형제에게 '라가'(가치 없는, 어리석은 이라는 뜻의 아람어)라고 욕을 했다.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한 것이 저주라는 것이다.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을 하고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중에 형제에게 욕하고, 저주한 것이 생각이 나면 제사와 예물 드림을 멈추고, 그 형제를 찾아가 사과하고, 용서를 받아 화목한 후에 돌아와서 제사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라고 하신다.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더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인간관계를 깰 수 있는 말이나 행동 등을 삼가 조심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본 받아야 할 피스 메이커이기도 하다. 조카 롯과 아브라함의 두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 그 당시의 고대근동지방의 재산은 가축을 의미한다. 양가가 다 가축이 늘어나자 초장이 모자랐고, 양가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 충돌이 빈번해지므로 숙질간에도 불편해 질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졌다. 아브라함이 조카를 불러 '우리는 골육이 아니냐. 친족 간에 싸우지 않기 위해서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제의한다. 롯이 보기에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하여 떠나므로 척박한 유대광야에 아브라함은 정착한다. 아브라함은 재산보다 골육 간의 화평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로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닮은 피스 메이커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답지 않고, 오히려 원수 마귀의 아들들 같다. 인정사정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 되어 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여야 한다. 평화를 심는 하나님의 자녀여야 한다. 화평을 심는 가장 완벽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혈관이 막히면 경화(硬化)가 일어나듯이 관계가 막히면 화평이 깨진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그리스도인의 거룩도, 관계도, 인생도 파괴를 면치 못한다. 이 상태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아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서로 용서하고, 용서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복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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