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침팬지나 여우는 인간보다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탁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침팬지나 여우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협력하기는 하는데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데 개미는 동료 간에 일사분란하게 협력은 해도 새로운 사회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벌들 역시 개미 못지않게 협력하지만 못된 여왕벌을 단두대에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세계에서 ‘촛불혁명’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 수많은 포유류 가운데서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침팬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라고.

유발 하라리의 견해대로라면, 가까운 친족 외에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수준이 침팬지나 코끼리 정도일 것이다. 친족만이 아닌 낯선 사람과도 폭넓게 협력하는 사람이 사회를 통합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어찌 낯선 사람뿐이겠는가. 원수와도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정 혹은 자기가 속한 사회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분명 미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의 충성이 자기가정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한다. 큰 사회조직을 운영하려면 자연히 낯선 사람과도 폭넓게 협력해야 한다. 새로운 이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인종과 문화, 새로운 개념 등과 유연하게 대응하고 협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남과 북의 물리적 분단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는 정신적 분단으로까지 고착되어 있다. 무려 70년 동안 그러고 있다. 이렇게 병적으로 굳어버린 분단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평화를 성취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원수와도 유연하게 협력하는 데서 성취할 수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런 사람, 그런 변화가 절실하다. 적을 원수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결코 오지 않는다. 오늘(2018. 4. 27)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위장이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만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실험 말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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