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구했던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데 주님께서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므로 그 안에 기쁨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주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를 좇던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갔을 때 신랑의 친구가 느끼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3:29)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의 안에는 항상 기쁨이 충만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9-10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자들은 가난하고 근심 중에 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사도들 중 사도바울만큼 고난을 많이 당한 자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기뻐하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매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들은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육체의 쾌락을 만족을 위해 산 사람입니다.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위해 일생을 보낸 그리스도인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모아놓아도 그것은 일순간이며 하나의 꽃만큼의 영광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쾌락과 안락을 위해 살다가 세상을 떠날 즈음엔 솔로몬과 같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일생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것에 집중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작은 욕심이나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장 합동 해외총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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