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4월 27일 오전 9시 30분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던 중계방송을 보던 아내가 눈물을 보이며 박수를 쳤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본 필자의 심정은 복잡했다. 분명 축하할 일이고, 바라던 일이고,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어딘가 서운하고 미심쩍고 의심스런 감정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할지를 모른 채, 그저 좋아하는 아내를 토닥일 뿐이었다. 단 하루를 머문 김정은의 성공적인 데뷔를 바라보면서, 하루아침에 그 오랜 세월의 갈등과 대립의 찌꺼기들이 사라진 듯 온통 장밋빛 전망과 분석을 내놓은 소위 전문가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왜 이리 가슴 답답해질까?

필자에게도 북한에 친구가 있다. 그가 지금 어느 위치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과거 필자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밀착 동행했던 그가 던졌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팀스피릿 훈련을 시비를 거는 그가 듣기에 조금 민망하고 기분 나쁠 대답을 했더니 발끈하면서 “임부총장 동무, 그런 말씀을 하시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공화국에 못오십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었다. 이 말에 질 수 없었던 필자는 곧장 “안 와요. 그리고 다음에 올 일이 있으면 심양 돌아서 값비싼 항공료 들여 1박2일로 돌아오지 않을 거고, 우리 집에서 내 차로 걸어 딱 3시간 안에 평양 오게하지 않으면 안 올겁니다”라고 되받았다. 느닷없는 필자의 기세에 주춤하던 그는 “남조선에 가시거든 대통령께 잘 말씀드리시라요.”라고 대답했다.

그 때는 노 대통령은 임기 얼마를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방북 2주를 남겨 놓았었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어림도 없겠지만 당시 필자가 북한의 절대존엄에 대한 비방으로 들릴 정도의 말을 해대도 넘어갈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았다. 돌아가서 대통령에게 잘 말하면 다음에는 서울에서 내 차로 평양을 올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남북상황이 어떻든 북한이 어떤 모양으로 나오든 결국 “남북문제 해결 주도권이 남측에 있다?”라는 속내 복잡한 북한 내면의 생각을 읽게 만들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아니 더욱 더 남북문제 해결의 주도적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데, 문제는 이 문제를 풀 우리의 정치적 역량이 북한에 비해 너무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권 수립 후 집권 세력이 바뀐 적이 없고 대남 전술의 변화가 없는 일관성을 견지하여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남 정보와 인적 인프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서 국내외 대북정보라인이 거의 와해 내지는 새롭게 바뀌면서 축적된 정보도 없을 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도 제대로 얻을 통로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는 남한 국민들이 이번 정상회담에 무조건 열광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서걱거리는 것은 바로 이런 내면적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 성공적인 북미회담과 4자 회담을 통한 종전 및 평화협정의 성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북한의 단계적인 개방과 남북교류를 활성화와 무리한 통일시도 없이 북한이 정상적인 국제무대의 일원이 되도록 도우며 남북신뢰를 북돋우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가장 절실한 것이 우리의 냉정함과 치밀함이다. 과거 북한이 보여주었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렸다. 필자에게 밀착했던 그 북한 참사의 말처럼 모든 것을 결정할 우리 대통령의 결단 배후에는 뜨겁고도 냉철하며 치밀한 국민적 역량이 절대적이다. 지금부터 남한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좌와 우리를 막론하고 현실에 대하여 들뜰지 말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다듬어 국가적 통일역량을 재고하고,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을 담보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 조국의 위대한 역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과거처럼 세계 열강이 함부로 우리의 역사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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