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때문에 기도는 중요하다. 하나님은 아우성치며, 울부짖는 자만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애급에서의 노예로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이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셨다. 우리가 울부짖는 아이에게 사랑을 더 주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아우성치는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이 기도는 죽은 후에도 후손에게 축복으로 나타난다. 한국교회가 영광을 누리고,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신앙선배들의 울부짖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도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곳을 넘게 하고, 모든 유혹을 이기게 한다. 매일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 성서에서 말하는 기도는 “마음과 생각을 바치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며, 대화이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인간 모두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다. 문제는 기도가 나 자신에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무게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도여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자유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제 몸을 상하고,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억울한 일들을 아뢰면서 기도했다. 곤란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하고, 호소했다. 즉 기도는 번뇌 중에 부르짖고, 아뢰는 것임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의 압제 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는 아우성 소리(기도)를 들으시고,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 얼마나 절박한 기도였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겠는가.

“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시130:1-2)”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부르짖음을 기조로 참회, 기원, 변명, 감사, 찬미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한마디로 무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민족 모두를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믿고, 간구했다.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행동하는 기도였다.

예수님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를 나누었다. 겟세마네동산에서의 기도, 십자가상의 절박한 기도 등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기도이다. 이 기도 중에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의 기도도 있고, 감사와 영광의 기도도 있다. 오늘 기독교의 가치가 그 어느 종교보다도 높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현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며…(롬 12:1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했다. 또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나…(눅 11:9)”고 교훈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한반도에 춘풍이 불어오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한반도의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해서 기도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용들이 지켜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은 모두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리고 행동하자.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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