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이 되로록 부름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섬기는 사랑에로 해방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는 사랑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요한1서는 명쾌하게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때문에 인간은 사랑 속에서만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공허하며, 거짓된 자유이다. 인간은 사랑을 받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사랑을 위한 자유라고 말 할 수 있다.

고아가 불쌍하고, 소외된 것은 집이 없고, 옷과 먹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 것은 아니다. 부모가 없어 사랑을 받아보지를 못했고, 사랑할 줄을 모르는 것 때문에 불쌍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경험하게 하고, 사랑할 수 있게 했다. 가정의 달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생각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 아닌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모든 사람의 종노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우선 자기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성서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라. 모두가가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를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같이 자신에 대해서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한다.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자신에게서 해방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자유 함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성서가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이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며, 닫혀진 사람이다. 진정한 이웃과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벽을 허물어 버릴 때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참된 이웃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아르다운 일인가.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랑과 인간 모두의 종이 되는 자유를 주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그리스도인 모두는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을 실천해 보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와 복음의 자유를 주기 위해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했다. 본래 율법은 선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과 결합되면,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강한 법을 갖게 된다. 율법이이 독재자의 손에 들어가면 악한 권력을 유지하는 명분을 준다. 불의한 사회구조와 결합되면 불의한 사회 체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악용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더 어렵게 만드는 유대인들을 보시고, 책망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진정한 이웃은 강도만나 고난을 당한 사람을 치료해 준 사마리아인이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라고 말했다. 당시 종교인이 레위인이나, 율법학자는 강도만난 이웃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이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무게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지를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만 둔 나머지 진정한 이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강도만나 신음하는 이웃을 우리가 돕지를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외침에 귀를 막는 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없는 사람이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인은 강도만나 신음하는 이웃과 전쟁과 기아로 고난을 당하는 세계민족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교회는 고난당하는 이웃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그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자.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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