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되는 날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어야 할 군인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이들의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또한 살아 있어도 군인에 의해 순결을 빼앗긴 어린 학생과 소녀, 부상을 입은 부상자들의 아픔과 한의 소리는 이 땅 방방곡곡에 메아리친다. 요즘 당시 광주에 내려간 군인들의 만행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분노한다.

꽃다운 젊은 목숨, 꽃다운 젊은 여성의 순결을 빼앗겼기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했지만 바르게 살았던 깨끗한 목숨, 불의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던 의로운 목숨,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 몸을 바치기로 다짐했던 많은 사람의 어진 목숨들이 죽임을 당하고 희생되었기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이 되는 오늘 우리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프다.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암담한 절망 속으로 빠트린 것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고, 평생 불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군인들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한 일간지 논설위원은 “하늘이여 땅이여 울어라”고 소리쳤다. 하나님은 카인(우리)에게 “네 아우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울고 있다”고 했다.

당시 국가는 이들을 폭도로 매도했다. ‘간첩 죄’까지 뒤집어 씌웠다. 또한 불의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고 독재타도를 외쳤던 의로운 광주시민은 군인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하고, 엄청난 고문을 못 이겨 죽임을 당했다. 여기에는 당시 국방부장관, 대통령, 군 지휘관 등이 직간접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광주를 벗어난 대부분의 국민들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독재정권의 목소리만을 믿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이 역사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해사건이다. 이들의 죽음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사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은 오늘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과 죽임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의 죽음은 인류역사의 근본문제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인류 역사의 맨 처음에 나오는 형제 살인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모순과 갈등의 깊이를 드러낸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외침은 증오와 분노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들의 ‘한의 소리’가 하늘과 땅에서 울부짖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카인의 아벨 살해사건은 인간들 사이의 깊은 증오와 분노를 말해 준다.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사회적이건, 국가적이건 인간 존재의 깊은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카인의 아벨 살해사건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왜 카인의 재물을 반기지 않은 것일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절실한 요구는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다. 남이 필요로 하는 존재, 남에게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려는 갈망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평화(샬롬)에 대한 신념을 다짐해야 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를 향해 확실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해야 한다. 이 땅에서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이를 위해 앞서서 나가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폭력적인 말이나 행동을 몰아내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앞에서 먼저 우리 자신을 회개하자. 우리 자신의 폭력적 삶을 회개하자. 샬롬을 노래하지 않고 힘에 의한 평화(팍스)를 외친 잘못을 회개하자. 이 나라의 반통일적이며, 반민주적인 것에 앞장섰던 잘못을 회개하자.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여! 38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못 다한 일들을 우리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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