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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의 '영혼의 눈'(평설 문현미 시인)
문현미 시인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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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6  15: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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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 문 현 미 시인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 계신다. 누구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늘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끄신다. 삶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일각일 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이는 것들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4장18절)는 말씀이 떠 오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본향이 있다는 믿음의 눈으로 살아갈 때 영원성에 연결되고 그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된다.

이 시는 시인이 맹인 가수의 노래를 듣고 받은 감동을 표현한 것이다. 눈먼 가수가 부르는 소리의 힘은 대단하다. 맹인 가수는 그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기도 하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바람 가는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비록 눈이 멀어 볼 수 없지만 그 가수는 눈을 뜨고 있는 자가 눈을 뜨고도 못 보는 것을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단순히 노래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소리의 힘과 그 속에 내재한 본질을 포착한 것이다. 아울러 그런 소리를 내는 가수의 영혼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맑고 밝은 마음의 귀를 지닌 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비밀을 캐낼 수가 없다. 허시인의 상상 공간에서 이루어진 신비한 만남으로 인해 가수의 소리가 놀라운 파급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내”기도 하고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리고,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도 하며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도 한다니 얼마나 탁월한 시적 상상력인가.

산문의 형태를 띠고 있는 시 속에 본질을 파악하는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가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했는데 시인과 가수의 만남, 소리와 생물·무생물의 만남으로 시가 아찔하고 독자도 아찔한 황홀에 든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이것이 축복의 길이고 믿음의 열매라는 걸 깨닫는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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