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헤겔 변증법에서 운동의 원동력은 정(正)에 있지 않고 반(反)에 있다. 정(正)이 새로운 정(正)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反)의 합리적인 저항이 필요하고, 이 저항은 새로운 정(正)으로써의 이념과 가치를 창출한다. 이 과정을 헤겔은 유화(宥和, reconciliation)라고 불렀다. 유화라는 말보다 화해라는 말이 쉬우나 그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어색하다. 유화는 단순한 화해의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과 투쟁을 거치면서 서로 용납하여 새로운 세계로 함께 이행하는 것이며, 서로 없애거나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보수우파는 지리멸렬하고 있고 또한 그런 그들을 완전히 궤멸시키려는 진보좌파의 기세가 가히 파죽지세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압승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은 보수우파의 자기 혁신이나 사상적 갱신없이 더 추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한심함 때문이다. 이미 패배를 전제해 놓고 그 후에 자파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듯한 그들의 패배를 예견하면서 필자는 동시에 진보좌파의 어두운 미래 그림자를 보고 있다.

망가져버린 보수우파의 중대한 실책이 진보좌파에 대한 적대정책과 말살시도였다. 문화계 불랙리스트가 무엇을 의미하며, 친박 진박들의 무례한 전횡으로 희생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집권 여당의 올바른 처신 방향을 능히 예견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탁월한 정치적 지혜와 정확히 응징하고 단호하게 끊어내는 민주적 역량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여하간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문 대통령의 1년이 시사하는 미래가 희망적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유화의 과정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진보를 꿈꾸는 현 집권세력의 무모함을 걱정한다. 역사를 선악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역사는 힘과 힘의 대결 산물이다. 힘과 힘이 같은 양으로 정당하게 충돌하는 역사는 위대한 생산적 진보를 가져 오지만, 한 편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역사는 파쇼적 독재와 반인륜적 패륜정치의 오물을 뒤집어쓴 슬픈 역사를 맞게 된다. 이것이 세계사의 교훈이다.

한국보수의 자멸은 진보를 궤멸시키려는 흐름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동시에 진보세력의 승리는 엄연하게 실존하는 강력한 보수의 힘을 인정하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빛바랜 색깔론과 개발독재 시절이 논리로 진보세력을 제압하고, 기득권 향유에 몰두한 보수는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무지하고 때로는 무감각한 독재적 발상으로 일관하였다.

그런데 나름대로의 민주적 과정을 거쳐 정권을 재창출한 지금의 집권세력이 모양과 무늬만 다를 뿐 실패한 보수의 길을 가려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민주당과 청와대는 긴장해야 한다. 상대가 없는 높은 지지율은 그 자체로 낭떠러지가 될 수 있음을 지난 정부가 보여주었다. 지난 정권이 인재나 돈이 없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만과 오만 불통과 고집이 만들어낸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 집권세력이다. 그러니 모두가 박수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필자와 같은 근심을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헤겔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세력과 세력의 유화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고 믿었지만, 공산혁명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맑스레닌은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폭력을 허용하면서까지 상대를 궤멸 혹은 장악함으로서 역사발전을 완결시키려 했다. 그들의 시도가 실패하고 독재정권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폐족을 선언했던 이들이 돌아와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기에 힘과 힘, 세력과 세력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뒹굴어야 그들의 미래도 있고 또한 국민이 행복하고 안전하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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