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만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예수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삶의 자리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 고아, 창녀, 세리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지 다가왔다“고 복음을 전하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공은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사는 것, 어느 정도의 권력을 잡고 휘두르며 사는 것, 지식을 많이 쌓아 남들에게 돋보이게 하는 것, 잘난 척 드러내려고 명예를 지니고 사는 것, 보양식과 좋은 음식을 골라 먹으며 건강한 몸으로 오래 장수하며 사는 것을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성공적인 삶의 정의(?)를 내린다. 예수님이 말하는 성공과는 대치되는 삶을 세상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한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고 교훈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나라운동에 동참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참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도 세상과 다르지 않다. 교회당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수 백억원을 들여 교회당을 건축하고, 그 자리에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 채운 목회자를 성공한 목회자라고 말한다. 교인들은 이런 목회자를 성공한 목회라고 평가한다.

교회사 학자인 백낙준 교수는 “한국교회의 참 목사는 농촌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며, 참 교회는 농민들을 섬기는 농촌교회다”고 말했다. 그런데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진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의 사이즈로 목회자를 평가하고 있다. 이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아닌 회칠한 무덤과도 같은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부자들의 눈물을 닫아주기에 바쁘다. 그래서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한다. 그곳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에 성공의 기준을 삼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 것을 추구하며,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험난한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실패한 삶은 아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은 우리를 실패의 자리로 안내하는 지극히 잘못된 분인가. 믿음의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떵떵 거리며 으쓱대며 자기를 나타내고 진수 성찬으로 차려먹고 화려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길! 험난한 길! 고달픈 길! 서러운 길!을 걸으며 그러한 삶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찾고,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사람이 참 스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렵고 험난한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신다. 세상가치를 따르지 않고 하늘의 가치를 따르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언제나 함께하신다. 붙들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연약한 나를 강하게 만들어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끝까지 함께 하시며 천국의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약한 나로 강하게 하셔서 세상가치를 물리치고,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며, 성공적인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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